이제야 겨우, 대중의 언어로 세월호를 말할 수 있다
우리 사회 정치적 쟁점 비화
부담스러운 주제 된 세월호
5주기 되어서야 ‘생일’ 개봉
애도 시작 무언의 신호같아

▲ 세월호 참사 5주기 사흘 전인 지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기억문화제 ‘기억, 오늘에 내일을 묻다’에서 참가자들이 촛불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일러스트/홍석범
▲ 세월호 참사 5주기 사흘 전인 지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기억문화제 ‘기억, 오늘에 내일을 묻다’에서 참가자들이 촛불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일러스트/홍석범


“4월은 잔인한 달.” 시인 엘리어트의 시 ‘황무지’는 이렇게 시작된다.지상에서 가장 유명한 이 시구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다.제1차 세계전쟁 이후 황폐해진 세상이 이 작품의 배경이 되었다.“4월은 잔인한 달” 뒤로는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운다는 시구가 이어진다.짧은 두 줄에는 죽은 땅에서 다시 꽃을 피우는 경이로운 생명,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야 하는 산 자의 서글픈 숙명이 담겨 있다.산 자들에게 4월은 잔인한 달일 수밖에 없다.

“4월은 잔인한 달.” 전쟁 이후의 참혹한 현실을 그린 이 시구가 우리의 현실이 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2014년 세월호 이전까지는.세월호 참사 이후,4월은 우리에게도 잔인한 달이 되어버렸다.전국민이 생중계로 배가 가라앉는 걸 목도했고,그렇게 침몰한 배에서는 단 한 명도 살아나오지 못했다.모두 뜬 눈으로 텔레비전 수상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을 때,날조된 뉴스가 ‘속보’ 타이틀을 달고 끊임없이 보도되었다.이후, 잠긴 세월호에서는 일련의 번호로 호명된 시신들이 차례로 수습되었다.시신이 뭍으로 나올 때마다 빨리 나와 줘서 고맙다는 부모들의 기막힌 감사를 들어야 했다.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오가는 과학의 시대지만,당시 배는 끝내 건져지지 못했다,어쩌면 않았다.

모두 슬퍼하고,아파하고,잔인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도 잠시,‘세월호 참사’는 정치적 사건이 되었다.사람들의 마음은 갈라지고 어긋났다.혐오의 논리와 언어들이 슬픔과 애도의 자리를 빠르게 채워나갔다.애도는 매도되고 희화화되었으며,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그때부터였을 것이다.사람들이 공개적인 애도를 주저하기 시작했던 것은.

그래서일까,영화 ‘생일’은 특별하게 다가온다.사실 ‘생일’이 세월호를 다룬 첫 영화는 아니다.이전에도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나쁜나라’,‘그날,바다’가 제작되어 상영되었고,그 외에 방송사에서 만든 다양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들이 있다.이들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다큐멘터리’ 장르의 성격을 충실히 반영해서 만들었다는 것이다.다큐멘터리는 사회의 분열을 염두에 둔 듯,참사를 꼼꼼하게 되짚어가는 노력을 보여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생일’의 상영이 생경하기도 했다.유가족의 인터뷰와 증언,관련 자료를 토대로 하기는 했지만 이 영화가 전도연,설경구를 비롯한 스타급 영화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라는 점에서.이 영화는 세월호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감추지 않는다.포스터를 보고,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있자니 격세지감이 들 정도였다.감독과 배우들이 세월호를 직접 말하고 있다는 이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말이다.

영화 ‘생일’에는 유가족의 고통과 그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과 오해가 응축되어 있다.보상금을 받았을 테니 건물에 투자하라는 친척 어른,순남의 울음소리 때문에 대학을 두 번이나 떨어졌다며 짜증을 내는 옆집 딸,오빠의 죽음 이후로 혼자서 욕조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동생 예솔,유가족을 돕는 활동가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냐며 거칠게 소리치는 순남,정신과 치료를 받는 순남이 오열할 때마다 안아주며 약을 챙겨주는 옆집 우찬 엄마.영화 ‘생일’은 영화 속의 사람들과 영화 밖 관객들의 눈물이,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들이 흐느끼는 소리들이 뒤섞여 영화의 안과 밖을 허문다.

세월호와 관련하여,방현석의 소설 ‘세월’도 다시 펴보게 된다.세월호를 생각하면 재잘거리며 수학여행을 떠났던 단원고 아이들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희생자 가운데는 일반인도 있었고,외국인(귀화한 베트남인)도 있었다.소설 ‘세월’은 제주도에 땅을 마련해 귀농의 꿈을 꾸던 네 가족 가운데 막내딸만 살아남은 기막힌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실제 주인공인 고(故) 판응옥타인의 아버지인 판반짜이는 세월호 뉴스를 듣고 한걸음에 한국에 왔지만,그 딸의 서글픈 죽음은 다른 죽음들과 동등하게 대접받지 못했다.판반짜이도 여느 아버지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딸의 주검 앞에서 “무릎이 꺾”이고,사람들이 휘두르는 말의 칼날에 “평형수를 빼버린 배처럼 균형을 잃고 휘청”(세월)거렸을 것이다.생명에는 국경,성별,나이,지위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쟁점이 되고,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보여주는 특정한 사건이 된 이후,세월호는 말하기조차 부담스러운 주제이기도 했다.세월호 5주기에 대중영화의 형식으로 극장에 걸린 ‘생일’은 작품성에 대한 평가를 떠나,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대중의 언어로 세월호를 말할 수 있다는 걸,비로소 애도를 시작할 수 있겠다는 무언의 신호처럼 보인다.이제야 겨우.

엘리어트의 ‘황무지’는 위의 시구에 이어 “기억과 갈망을 뒤섞으며,둔해진 뿌리를 봄비로 흔든다”고 노래한다.대중영화로 시도된 ‘생일’과 ‘악질경찰’(이 글에서 다루지는 않았지만)이 세월호에 대한 기억과 미래에 대한 바람을 뒤섞고,애도조차 하지 못한 채 움츠러들었던 마음의 뿌리를 흔드는 봄비 같다는,그런 생각이 든다.

유강하 강원대 교수

중국고전문학·신화를 전공했다.지금은 강원대학교에서 인문예술치료를 연구하고 있다.지은 책으로 ‘아름다움,그 불멸의 이야기’,‘고전 다시 쓰기와 문화 리텔링’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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