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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만원의 후회

이영춘 시인

데스크 2019년 05월 08일 수요일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어제는 한 지인에게 편지를 썼다.부모님 살아계실 때 잘 해 드려야 한다고…,얼마 전 그분의 아버지가 편찮으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그 때 그 지인은 아버지가 80세 가까운 고령이신데도 수술을 원하신다는 것이다.그래서 수술을 해 드려야 할 지 안 해야 할 지 모르겠다면서 자문을 청했다.나는 단호히 “수술하다가 잘못 된다고 해도 부모님이 원하시는 대로 해 드려야 나중에 후회가 없다”고 권했다.그리고 까맣게 잊고 있다가 어제 문득 생각이 나서 메일 편지를 쓴 것이다.그런데 뜻밖의 답장이 왔다.이미 돌아가시고 엊그제 49제를 마쳤다고.그는 주위에 미처 알리지도 못하고 장례를 치러 미안하다고까지 했다.나는 지인의 아픔이 나에게로 전해 오는 듯했다.새삼 돌아가신 내 부모님 생각이 가슴을 치고 올라왔기 때문이다.그것은 바로 살아 계실 때 잘 못 해 드렸던 일에 대한 후회다.

내 나이,삼십 대 초반이었다.어느 날 아버지가 느닷없이 찾아 오셨다.아버지가 딸네 집에 찾아오는 예는 극히 드물었다.더구나 셋방살이 하는 딸을 찾아오시리라고 나는 상상도 못했다.그런데 아버지는 오셨다.저녁을 잡수시고는 별 말씀 없이 그냥 그날 밤을 보내셨다.그리고 다음 날 아침,내가 부랴부랴 출근하려고 녹슨 철대문을 밀고 골목길을 막 돌아서 나가려는데 뒤에서 아버지가 “야야! 야야!”하고 부르신다.왜 그러시냐며 돌아섰더니 겨우 입을 떼신다.“너…, 돈… 한 삼십 만원 없겠니?!”라고 하신다.(지금의 화폐 가치로 한 300만 원은 족히 될 돈이다.)

“아버지, 제가 이렇게 사는데 무슨 돈이 있어요!”라고 야박하게 쏘아붙이고는 급하게 출근을 하고 말았다.그 후 내가 사십대 중반을 넘어서야 그렇게 내뱉은 말이 평생 내 가슴속에 쇠못으로 박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평생 후회가 되었다.더구나 돌아가시기 전에 그 때 그 돈을 못 해 드려서 미안했다는 말을 드렸어야 했는데 끝내 그 말을 듣지 못하신 채 아버지는 가시고 말았다.평생 처음으로 딸에게 꺼냈던 그 말이 무참하게 거절을 당했을 때의 아버지 심정이 어떠했을까?남에게 돈을 부탁하다가 거절당해도 무안하고 비참한데 하물며 딸에게서 거절을 당했을 때의 아버지의 심정은 오죽하셨을까?지금까지도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는 한으로 남아 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가정의 달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다.우리 자신이 후회하지 않도록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고 아프지 않게 해 드리는 것이 효의 근본임을 우리는 잘 안다.문제는 실천이다.요양원에 맡겨진 어떤 할머니는 자식이 오는가 하고 휠체어를 탄 채 매일매일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신단다.그러나 그 자식은 명절 때도 어버이날에도 한 번도 안 찾아온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또한 제 부모나 혹은 계모 계부 손에서 학대당하고 죽어가는 아이는 없는가?우리는 늘 부모는 물론,내 이웃에게도 관심과 정성의 마음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약력]△강원여성문학인회 고문△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겸 감사△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한국여성문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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