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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종교 분야 초월 선구적 저항운동 전개

청오 차상찬 학술대회

김호석 kimhs86@kado.net 2019년 05월 11일 토요일

강원도민일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한국잡지언론의 새 지평을 연 청오 차상찬(1887∼1946·춘천출신) 선생의 항일정신과 민족문화운동을 재조명하는 ‘2019년 청오 차상찬 학술대회’를 10일 한림대 국제회의실에서 개최했다.청오차상찬기념사업회와 공동으로 주최하고 한림대 아시아문화연구소와 강원문화교육연구소가 주관하고 강원도와 춘천시,옥산가 대일광업이 후원한 이번 학술대회의 주제발표와 토론내용을 간추려 싣는다.




[기조강연] 차상찬전집(1·2·3권)의 내용과 의미(정현숙 차상찬전집발간 연구책임자·한림대)

“검열 속 40여개 필명으로 생생한 역사 기록 사투”

‘차상찬전집’1권과 2권은 잡지 ‘개벽’에 실린 ‘조선문화의 기본조사’에 대해 다루고 있다.책에는 해당 지역이 어떻게 일제에 저항했고,일본인 세력들이 얼마나 차지하고 있는가 하는 것에 글의 초점이 놓여있다.차상찬은 3·1 운동을 ‘기미년민족운동’이라고 칭하는데 개벽을 비롯한 여러 잡지의 글 등을 통해 그의 민족정신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당시 일제에 의해 엄혹한 사전검열을 당해야 했다.차상찬은 1926년 3월 ‘개벽’(67호)에 이완용을 저격한 이재명에 대한 글 ‘새로 追憶되는 李在明君’을 발표했다.이 글은 당시 전문 삭제됐는데 ‘차상찬전집’ 3권에 전문이 실려 있다.이 글 뿐만 아니라 당시 전문 혹은 부분 삭제 당한 글은 여러 편이다.때문에 차상찬은 당시 무기명으로 글을 쓰거나 다양한 필명을 사용해 글을 게재해야만 했다.그러다보니 개벽 등 당시 잡지에 실린 무기명,필명을 사용한 글을 조사한 결과 40여개가 넘는 필명으로 쓴 차상찬의 글들을 발굴할 수 있었다.

 이중 눈에 띄는 것은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차상찬의 필명과 글 중 ‘검악산인’(劒岳山人)’이라는 필명으로 1931년 9월 ‘혜성’(彗星)1권 6호에 빌표한 안중근 이등암살 전말(安重根 伊藤暗殺 顚末)이다.이 글은 차상찬이 안중근은 어떤 인물인가,안중근이 이토를 암살하기까지의 과정,하얼빈에서의 거사 등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으며 안중근의 공판 사진과 안중근의 자필사진도 실려 있다.혹독한 검열에 시달리던 당시 차상찬은 필자를 숨기려고 생소한 ‘검악산인’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다.




[주제발표 1] 차상찬의 민족문학발굴공적-김삿갓 한시수집과 한국문헌설화 재정리┃심경호(고려대)

“야담 머물던 김삿갓 역사적 인물로 부각”

김삿갓 시의 양식,이응수의 ‘김립시집’ 편찬 과정,일제강점기 김삿갓 형상의 조형에 관해 고찰해 ‘김삿갓 한시’(서정시학·2018)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이응수 이전에 ‘개벽’의 창간 동인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언론인이라 일컬어지는 차상찬이 중심이 돼 ‘개벽’에서 김삿갓 시를 대대적으로 수집한 사실을 알게됐다.실제로 차상찬은 풍악산인이란 필명으로 김삿갓 한시가 민족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최초로 의미 있는 논설을 발표했다.차상찬은 1930년대에는 수많은 야담소설을 창작해 민족문화를 발굴하는데 앞장섰다.차상찬은 일제 어용학자 아오야기 츠나다로의 ‘조선사천년사’(1917)에 대항하는 의미에서 비체계적,사건 중심,인물 중심의 역사서인 ‘조선 4천년 비사’를 엮으면서 ‘역대인물열전’ 20인 가운데 제17인으로 김삿갓을 다루었다.야담의 세계에 머물던 김삿갓이란 존재를 역사적 인물로 적극적으로 부각시킨 것이다.차상찬의 역사서술은 조선사편수회 중심의 어용 사학과 대결하는 의미를 지녔으리라 생각된다.




[주제발표 2] 청오 차상찬의 천도교 활동에 대한 고찰┃성주현(숭실대)

“개벽사 창립 천도교 문화운동 중심축 담당”

춘천에서 출생한 차상찬은 형 차상학의 영향으로 1904년 천도교에 입교했다.당시에는 동학이라 불렸으며 정부로부터 여전히 탄압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도교에 입교했다는 것은 천도교의 사상과 종교적 교리에 공감했음을 의미한다.천도교에 입교한 차상찬은 천도교 청년운동에 참여했고 천도교에서 전개한 문화운동의 중심에서 그 역할을 다했다.차상찬은 천도교 청년단체와 부문단체의 주요 임원으로 참여는 했지만 이들 단체의 대내외 활동에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이는 개벽사의 실질적 편집인으로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차상찬은 1920년대 천도교 청년단체에서 전개한 문화운동에서는 한 축을 담당했다.천도교청년회의 문화운동의 상징은 ‘개벽사의 창립’이었다.차상찬은 춘천을 대표하는 언론인,근대인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차상찬의 연구는 일천한 형편이다.이번 기회를 통해 차상찬에 대한 보다 폭넓은 연구와 선양사업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주제발표 3] 1920~30년대 언론계와 차상찬┃야나가와 요스케(서울대)

“언론 역사 체계적 정리, 신문 발달사 기여”

한국근대사에서 문필가 또는 언론인으로 기억된 차상찬의 삶은 매우 다양한 양상을 띤다.최근 일련의 학술 행사와 평전,전집 간행을 통해 차상찬의 생애가 가시화돼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면서 그의 문화사적 위상이 개벽사를 중심으로 형성된 사실이 부각됐다.‘개벽’ 특파원으로 각 지방을 답사해 민요를 수집한 기자 차상찬은 ‘별건곤’,‘혜성’,‘제일선’,‘개벽’(속간호) 편집자로 활동한 점에서 출판인이라 할 수 있다.차상찬의 역사 서술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정사와 관련된 것으로 ‘신문 발달사’를 들 수 있다.1930년대 차상찬은 근대 신문의 역사를 4편 발표한 바 있는데,이는 언론의 역사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았던 당시 상황에서 이루어진 선구적인 작업이었다.차상찬은 출판사의 원고 청탁을 받아 정리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언론인으로 활동한 그의 경험이 신문 발달사 서술을 가능케 한 것은 분명하다.



▲ 2019 청오 차상찬 학술대회가 10일 한림대 국제회의실에서 경민현 강원도민일보 전무이사,김중수 한림대 총장, 이재수 춘천시장, 이원규 춘천시의회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김명준
▲ 2019 청오 차상찬 학술대회가 10일 한림대 국제회의실에서 경민현 강원도민일보 전무이사,김중수 한림대 총장, 이재수 춘천시장, 이원규 춘천시의회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김명준

[종합토론] “차상찬 민족문화운동 연구 학술사적 의미 커”

>>토론자

엄태웅 강원대 교수

조성운 동국대 교수

유승환 부산대 교수

>>사회

김명준 한림대 교수



▲엄태웅(강원대)= ‘차상찬의 민족문학 발굴 공적’ 논문은 차상찬의 김삿갓 한시 수집,야사 편찬,야담소설 창작 등의 행적을 꼼꼼하게 살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이 논문을 통해 그간 포괄적으로 그리고 막연하게 이루어졌던 차상찬에 대한 연구가 보다 구체적인 길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고 본다.차상찬이 수집한 시들을 자세히 발표하지 않은 이유가 혹시 ‘고증의 한계’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한다.이미 알려진 것처럼 차상찬은 한시도 창작했다.한시에 대한 감식안이 있는 차상찬에게,수집된 자료는 검증에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한 대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차상찬의 야담소설 ‘안평대군 실연’은 고전소설의 영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중반부까지는 ‘구운몽’,후반부는 ‘운영전’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닐까 예상해 본다.

▲조성운(동국대)= ‘차상찬의 민족문화운동 고찰’ 논문은 차상찬의 천도교 활동에 대한 연구다.주로 언론과 문학 분야에서 이루어진 그에 대한 연구로서는 역사학에서는 최초라 평가할 수 있다.천도교 청년운동과 문화운동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은데 비해 그에 대한 역사학적 연구가 이제야 나온 것은 천도교 전공자나 근대 문화사 전공자들의 직무유기라 할 수 있을 정도라 생각된다.이러한 의미에서 늦은 감이 있으나 학술사적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먼저 논문에서는 천도교단 내에서 차상찬의 활동에 두드러진 특징이 발견되지 않는데 1934년 천도교 청우당 제8차 전당대회 이후 천도교단 내에서의 차상찬의 활동에 대해 듣고싶다.

▲유승환(부산대)=야나가와 요스케의 발표는 실증적 조사를 기초로 1920~1930년대 차상찬의 언론 활동을 상세하게 밝히며,이를 통해 차상찬이 저술한 ‘조선신문발달사’의 특징 및 저술 경위를 설득력 있고 흥미롭게 제시하고 있다.발표 내용에 공감하며 보다 세밀하게 논의될 수 있을 만한 부분을 제시하려 한다.첫째,차상찬이 1930년과 1935년이라는 두 시점에서 ‘신문사’를 ‘다시’ 저술한 배경과 경위에 대해 보충설명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둘째, 차상찬이 ‘정사’와 ‘야사’를 구별하는 감각을 갖고 ‘신문발달사’를 ‘정사’라는 감각에서 썼다고 할 때,그 의미에 대해 보충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정사’와 ‘야사’가 동아시아 역사서술 전통에 입각한 개념으로 ‘근대사’의 영역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정리/김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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