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권 교수의 도시건축기행] 2 도시특성을 활용한 도시설계
스페인 공업도시였던 빌바오
철강·석회암 이미지 부각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부활
‘문화’ 바탕으로 경쟁력 확보

▲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느낌과 형태를 보여주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느낌과 형태를 보여주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도시계획이란 말 그대로 도시를 계획하는 것이다.인구 10만 명이 살기 위한 도시를 계획하기 위해서는 건축 및 도시계획전문가와 더불어 각계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필요로 한다.전기,가스,그리고 수돗물은 어느 정도 공급돼야 하는지,초등학교와 경찰서는 몇 개가 적당한지,그리고 도시건설비용과 법적인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계획해야 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러한 도시계획의 문제점은 계획된 모든 도시의 결과물이 비슷하게 표현된다는 점이다.도시를 계획할 때 도시계획가들은 그 도시의 위치가 서울이나 지방,산과 강이 수려한 곳이나 심지어 제주도와 같이 섬 지역에 있는 도시를 계획할 때도 각 도시의 도로폭이나 도로율,상업지역과 주거지역의 비율,도서관과 같은 문화공간의 규모까지도 비슷하게 계획하게 된다.같은 수의 인구를 위한 도시를 계획하기 때문에 차별을 둘 수도 두어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개발행위와 자동차를 중심으로 계획돼 쇠퇴된 공공공간의 회복을 위해,그 지역의 특성과 정체성을 바탕으로 그 지역과 도시만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1980년대 이후 새로운 전문영역인 도시설계가 출현하게 됐고 그 필요성이 요구되기 시작했다.이러한 도시설계에서는 도시의 특성과 정체성의 경쟁력이 취약할 경우 새로운 도시의 특성을 만들어내기도 한다.이러한 취약한 도시특성을 강한 도시경쟁력이 되도록 도시이미지를 완전히 탈바꿈한 대표적인 도시가 스페인 바스크지방의 빌바오시다.랜드마크 건축물 하나가 쇠퇴한 도시의 경쟁력을 새롭게 확보하는 현상을 ‘빌바오 효과’라고 한다.이러한 신조어를 탄생시킬 만큼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이 도시를 새로운 도시의 랜드마크로서 도시의 경쟁력을 새롭게 구축했다.

스페인 바스크 주(州)의 빌바오 시(市)는 수도 마드리드에서 400여㎞ 거리에 있는 수변도시다.무역항과 제철,조선산업단지를 갖고 있어 1980년대 아시아 국가들에게 철강산업의 주도권을 빼앗기기 전까지는 스페인의 공업중심지였다.주요산업의 경쟁력을 잃고 스페인 정부로부터 바스크지방을 독립시키기 위한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테러까지 겹쳐 빌바오시는 급격하게 쇠퇴했다.빌바오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랜드마크 건물을 세우는 문화산업을 채택했고 구겐하임재단으로부터 미술관을 유치하는데 성공해 빌바오시는 구겐하임미술관으로 제2부흥기를 맞이한다.

건축가 프랑크 게리(Frank Gehry)가 설계한 이 미술관의 화려한 곡선으로 이뤄진 외관은 강변이라는 대지의 특성과 연계해 한 척의 배 또는 물고기들이 뒤엉켜 헤엄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인다.건물외관의 곡선부분은 티타늄으로 비가 자주내리는 빌바오 기후와 과거 철강도시 이미지를,직선부분은 스페인산 석회암으로 지역이미지를 느끼도록 했다.
▲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내 리처드 세라의 조각들이 영구 전시된 갤러리.
▲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내 리처드 세라의 조각들이 영구 전시된 갤러리.

내부로 들어가면 천정높이가 55m인 아트리움의 건축공간이 다양한 조각처럼 느끼게 한다.폭 30m,길이 130m의 가장 큰 전시장은 미국 조각가인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의 작품을 영구히 전시하고 있고, 미술관 야외공간에는 높이 12m,2만개의 화분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강아지,제프 쿤스(Jeff Koons)의 ‘퍼피’가 서있다.퍼피는 미술관 개관기념으로 잠시 설치됐다 철거예정이었지만 인기에 힘입어 영구 소장이 결정됐다.이처럼 현대미술품이 주류지만 아마도 관람객의 대다수는 프랑크 게리의 현대 건축물을 보러 이 곳을 방문하는 것으로 보인다.이 미술관이 현대건축 뿐만 아니라 현대예술과 문화에 끼친 영향이 정말 대단하기 때문이다.1997년 네르비온 강가에 이 빌바오 미술관이 개관하면서 누적관광객 2000만명,매년 100만명이 찾는 명소로 바뀌었고 현재까지 초기투자비의 20배 이상을 회수한 엄청난 관광자원으로 자리매김했지만,빌바오 도시설계의 성공은 구겐하임 미술관 하나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다.1991년 미술관 유치를 위해 바스크 주는 1억 달러 규모의 건설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만큼 산업적 역량이 튼튼히 쌓여있었고,도시인프라 재정비 등 많은 노력의 화룡점정이 구겐하임 미술관이었던 것이다.또한 빌바오 시민들의 대부분은 ‘네르비온’ 강가의 우수한 건축물이나 브릿지를 설계한 건축가들을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그 당시 1억달러의 돈을 들일 미술관의 유치를 받아들일 만큼 문화와 건축에 대한 소견이 뛰어났다.

▲ 스테인레스구조물, 흙, 화분으로 이루어진 제프 쿤스의 ‘퍼피’
▲ 스테인레스구조물, 흙, 화분으로 이루어진 제프 쿤스의 ‘퍼피’

그러나 이러한 도시인프라와 뛰어난 시민들의 문화의식을 바탕으로 도시의 경쟁력을 확보했지만 제철,조선산업의 공업중심지였던 도시의 정체성이 문화산업으로 급격히 개편되면서 새로운 갈등과 문제점이 노출됐다.구겐하임 미술관으로 인한 도시의 이미지와 산업구조의 개편은 기존 직업수의 감소와 급격하게 늘어난 새로운 분야의 직업창출로 원주민들의 양극화가 야기됐다.바스크주의 다른 도시들보다 빌바오시의 실업률이 두배 가까운 것은 이를 대변하고 있다.

도시의 문화 경쟁력이 곧 도시의 경쟁력이 된 지금 빌바오시의 성공과 그에 따른 갈등은 우리에게 새로운 자극과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도시의 특성과 정체성이 관광과 자연환경이 대부분인 강원도 도시에 문화라는 경쟁력을 갖게 만든다면 도시민의 삶과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른 갈등없이 자연스러운 도시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우리 도시들에게 새로운 도시의 정체성이 아닌 우리 도시들의 특성과 정체성을 살린 도시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석권 강원대 건축과 교수

△춘천고,강원대 건축공학과 졸업 △한양대 공학 석사,강원대 공학 박사 △대한건축사협회,한국도시설계학회,한국문화공간건축학회 정회원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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