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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혁 칼럼] 이 총리에 대한 고마움이 원망이 되고 있다

권재혁 논설위원

권재혁 kwonjh@kado.net 2019년 05월 14일 화요일
▲ 권재혁 논설위원
“제도를 뛰어넘는 지혜를 모으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달 동해안 산불 피해지역인 속초를 방문해 이재민들을 만나 이 같은 말을 했다.이 총리가 산불 현장을 세 번씩 방문하자 이재민들은 그의 진정성을 믿고 어려움을 토로했다.한 주민이 “총리를 보니 반갑고 마음의 위로가 되지만 고마움이 증오와 원망으로 변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하자,이 총리는 “겁주지 마라.마음이 덜컹덜컹한다.국민들이 고통을 나누려는 마음이 있으니 혼자가 아니라는 마음을 갖고 용기 내라”라고 위로했다.이재민들은 이 말에 안심했다.

지난달 강원 도내 5개 시군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2832ha가 타고,566개의 주택이 파손되고 1288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한 달 후 산불 피해복구 지원금은 2080억 원(국비 1305억 원)으로 확정됐다.그런데 국비의 80%가 산림복구,폐기물 처리,공공시설 및 군사시설 복구 등에 지원된다.이재민들이 가장 관심있는 정부의 주택복구비는 1300만 원 지원이 전부였다.강원도가 2000만 원을 지원하고,국민 성금으로 전파 시 3000만 원,반파 시 1500만 원,세입자는 1000만 원을 지원한다.최대 지원금이 6300만 원이다.

국민주택 규모인 25평의 집을 평당 500만원의 건축비로 계산해도 1억2500만 원이 소요된다.정부는 저리 융자지원을 약속했지만,고령자에게 돈을 빌려줄 은행은 많지 않다.특히 정부에서 지원하는 돈 보다 국민 성금이 더 많다.이재민들을 도운 것은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다.그동안 산불현장을 방문했던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장관,여야 대표,국회의원들의 지원 약속은 생색내기에 불과했다.재난 발생 시 국가적 지원 정책보다 국민 성금에 의존해야 하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소상공인과 자영업 이재민들의 고통은 더 심하다.이들은 시설 복구와 중단된 영업을 정상화하는데,10년이 걸리고 재기하려면 또다시 빚을 져야 한다.재고와 납품 영수증 등 모든 것이 불에 타 피해 신고액 입증이 쉽지 않고 거래처에 대금을 청구할 근거도 없다.정부가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대출 한도 확대와 이자 인하 등 융자금에 국한되어 있다.한마디로 이재민보다 자연보전과 공공·군사시설 복구 지원에 초점이 맞춰졌다.

고성·속초 이재민들은 산불 발화 원인이 한전에 있다는 경찰 수사 결과 발표로 한전에 보상을 청구할 수 있지만,강릉·동해지역 이재민들은 대부분 자비로 복구해야 한다.양봉업자들은 몇 년 농사를 망쳐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이런 이재민들의 고통을 국회마저 외면하고 있다.여야 국회의원은 오로지 선거구제 개편 등 자신들의 밥그릇 싸움에만 몰두하고 있다.그래서 국회의원들의 산불현장 방문은 언론 홍보용이라는 비아냥을 듣는다.

이재민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현실의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임시 숙소에서 생활하는 이재민들은 언제 집을 짓고 돌아갈지 막막하다.일터를 잃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절망의 탄식 소리만 절로 난다.이들이 대형산불로 피해를 입은 것은 재산만이 아니다.그들의 소중한 추억과 그리움,그리고 정부에 대한 믿음도 모두 타버렸다.이재민들은 청와대 등을 방문해 정부를 규탄하는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 총리가 말한 ‘제도를 뛰어넘는 지혜’는 없었다.결국 그의 말은 허언(虛言)이 됐다.그의 말을 믿었던 이재민들은 이 총리에 대한 고마움이 증오와 원망으로 변하고 있다.이재민들에게 잔인한 나날이 5월에도 계속되고 있다.모두 타버린 산불지역은 새 생명인 새싹들이 다시 나오는데,이재민들에게 희망의 새싹은 보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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