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몬스터’ 류현진(32·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첫 스승은 고(故) 이무일 전 인천 창영초등학교 야구부 감독이다.

류현진은 초등학교 4학년 때인 1997년 아버지 류재천 씨의 권유로 야구부가 있는 창영초로 전학했는데, 그 해 이무일 감독과 사제의 연을 맺었다.

이무일 전 감독은 어린 류현진에게 많은 것을 가르쳤다. 야구 기술뿐만이 아니었다. 선수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삶의 철학, 목표를 끊임없이 주입했다.

류현진은 이무일 전 감독이 뿌린 토양에서 힘차게 뿌리를 내렸고, 이후 무럭무럭 자라 세계 최고의 투수로 성장했다.

연합뉴스는 류현진의 첫 스승인 이무일 전 감독의 교육철학과 류현진의 초등학교 시절 흔적을 찾기 위해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모교인 창영초등학교를 찾았다.

◇ 류현진의 첫 스승, 야구가 아닌 인성을 가르쳤다 = 이무일 전 감독은 교육자였다.

이 전 감독은 훈련 못지않게 인성 교육과 학교 수업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류현진 등 제자들에게 모든 정규수업을 철저하게 듣게 했고, 숙제도 반드시 하게 했다.

숙제하지 않거나 수업을 허투루 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무섭게 아이들을 다그치곤 했다.

이무일 전 감독의 아들이자 당시 창영초 야구부 코치로 활동했던 이호영 전 코치는 “인천 내 초등학교 야구부 선수 중 학교 숙제를 했던 선수들은 우리 아이들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류)현진이도 당시 숙제를 하지 않아 혼났던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무일 전 감독은 선수들이 야구만 하는 ‘야구 기계’로 성장하지 않길 바랐다.

인성과 예절, 배려심을 강조했다.

선수들이 야구를 통해 많은 추억을 쌓길 바라기도 했다.

이호영 전 코치는 “아버지는 훈련이 끝나면 선수들을 모두 데리고 입장료가 단돈 500원인 학교 앞 허름한 목욕탕에 가셨다”라고 말했다.

이무일 전 감독은 무더운 여름엔 학교 화장실을 잠근 뒤 아이들이 물장난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했다.

공동묘지 훈련을 고안한 것도 이무일 전 감독이었다.

이호영 전 코치는 “아이들의 담력을 키우기 위해 부평 공동묘지를 찾아 훈련했다”라면서 “당시 학부모님들에게 귀신 역할을 부탁드렸는데, 류현진의 아버지인 류재천 씨도 열심히 귀신 역할을 했던 게 생각난다”라고 말했다.

이무일 전 감독은 선수들에게 획일적인 교육을 하지 않았다. 선수들 스스로 방법을 찾고 많은 가능성을 발견하길 바랐다.

이호영 전 코치는 “류현진은 처음 입단했을 당시 우타, 좌타를 동시에 하는 스위치 선수였다”라며 “아버지는 (류)현진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기다리셨다”라고 말했다.

경기 중 웃음을 띠는 류현진을 나무라지도 않았다. 이호영 전 코치는 “류현진의 경기를 보면 안타나 홈런을 허용한 뒤 웃음을 짓는 모습이 간혹 나온다”라며 “이는 긴장감이 풀어지거나 경기를 가볍게 여기는 게 아니다. 어이가 없어서 짓는 표정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공에 확신을 갖고 있는 일종의 자신감의 표현인데, 이는 초등학교 때 생긴 버릇”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국내 학생 야구경기에서 선수가 웃음을 보이면 꾸지람을 듣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류현진의 웃음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던 이무일 전 감독은 만류하거나 꾸짖지 않았다.

이호영 전 코치는 “아버지는 선수들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선수 생활을 하길 바라셨다”라고 말했다.

◇ 류현진은 첫 스승, 이무일 전 감독을 잊지 않았다 = 류현진은 이무일 전 감독의 가르침을 잊지 않았다.

중,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KBO리그 한화 이글스의 지명을 받아 프로가 된 뒤에도 이무일 전 감독을 찾아가거나 연락을 드려 기쁜 소식을 알렸다.

훌륭한 야구선수로 인도해준 스승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둔 2012년 말, 류현진은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야구 인생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두 명의 이름을 말했는데 한 명은 프로 무대 첫 스승이었던 전 한화 김인식 감독이었고 다른 한 명은 이무일 전 감독이었다.

그만큼 이무일 전 감독은 류현진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지도자였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세계적인 스타가 된 뒤에도 류현진은 이무일 전 감독을 잊지 않고 찾았다.

2013년 빅리그 첫해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 귀국해 창영초교 후배들을 후원하며 스승의 뜻을 받들었다.

류현진은 스승의 마지막 길도 함께 했다.

이무일 전 감독은 2014년 11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당시 메이저리그 정규시즌을 마치고 귀국해 있던 류현진은 빈소를 찾아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이호영 전 코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소식을 알리지 않았는데, (류)현진이가 불쑥 찾아와 놀랐다”라면서 “슈퍼스타가 된 터라 많이 바빴을 텐데,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지켜줘 고마웠다”라고 말했다.

이 코치는 “아버지는 현진이가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시며 매우 자랑스러워하셨다. 최근 류현진이 사이영상 후보로까지 꼽히고 있는데, 살아계셨다면 더 기뻐하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 스승·선배의 뜻을 이어가는 후배들…창영초등학교엔 제2의 류현진이 자란다 = 이무일 전 감독의 교육철학과 류현진의 존재는 한국 야구 역사의 한줄기인 창영초등학교 야구부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창영초교 야구부의 역사는 매우 길다. 일본강점기였던 1920년대에 태동했다.

창영초는 류현진을 비롯해 삼미 슈퍼스타즈의 초대 지도자인 박현식 감독, 임호균 전 삼성라이온즈 코치, 두산베어스 정경배 타격 코치 등 수많은 유명 선수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창영초등학교는 도시 계획으로 인한 인근 주민들의 신도시 이주로 규모가 점점 축소됐다.

3천여명이던 전교생은 현재 208명까지 줄어들었다. 한 학년 당 단 2개 반으로 운영하고 있다.

학생 수가 줄다 보니 창영초 야구부는 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고 수차례 해체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2015년엔 해체 직전까지 갔다가 100년 역사의 야구부를 없앨 수 없다는 인천시 야구협회의 만류와 지원으로 간신히 회생했다.

현재 창영초 야구부는 18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는 6학년 남학생 수(26명)와 크게 차이가 없다.

상황은 열악하지만, 창영초 야구부 선수들은 이무일 전 감독이 새겨놓은 교육철학과 ‘류현진의 후배’라는 자부심 속에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2016년 SK 와이번스 초, 중 야구대회에선 초등부 준우승을 차지했고, 2015년 제15회 박찬호기 전국대회에선 준우승했다.

창영초 야구부 홍정수 감독은 “힘든 상황 속에도 야구부의 명맥을 이을 수 있었던 건 이전 지도자들이 닦아놓으신 교육철학과 류현진 등 걸출한 선배들의 존재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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