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 인프라 부족으로 중증정신질환자 조기발견·지속치료 어려워
정신건강에 보건 예산의 1.5% 투입…복지부 “선진국처럼 5% 수준 도달해야”

▲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5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정신건강복지센터 인력 확충과 24시간 출동 응급개입팀 설치를 주요 내용으로 한 ‘중증정신질환자 보호ㆍ재활 지원을 위한 우선 조치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정부는 발병 초기 환자를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해 지속 치료를 지원하는 조기중재지원 사업을 도입하고 저소득층 등록환자는 발병 후 5년까지 외래 지원비를 지원할 예정이다.  2019.5.15
▲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5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정신건강복지센터 인력 확충과 24시간 출동 응급개입팀 설치를 주요 내용으로 한 ‘중증정신질환자 보호ㆍ재활 지원을 위한 우선 조치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정부는 발병 초기 환자를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해 지속 치료를 지원하는 조기중재지원 사업을 도입하고 저소득층 등록환자는 발병 후 5년까지 외래 지원비를 지원할 예정이다. 2019.5.15

정신질환은 조기진단과 지속치료가 중요하지만 사회적 편견이나 치료·보호 인프라 부족으로 조기발견 실패, 치료 중단, 질병 만성화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15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신의료기관 입원 환자는 2016년 6만9천162명에서 지난해 6만6천27명으로 4.5% 줄어드는 데 그쳤다. 2017년 5월 정신건강복지법 시행으로 정신보건정책 방향이 조기발견·치료와 사회복귀 촉진으로 변화했지만, 실질적인 지원 부족으로 성과는 미미했다.

정신건강복지법은 정신질환자를 ‘망상, 환각, 사고나 기분의 장애 등으로 독립적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중대한 제약이 있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국내에는 조현병, 조울증, 재발성 우울증 등을 앓는 중증정신질환자가 50만명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7만7천명은 정신의료기관이나 정신요양시설에 입소해있고, 9만2천명은 지역사회 재활시설에 등록돼 관리되고 있지만 나머지 33만여명은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중증정신질환은 주로 10대 후반에서 성년기 초반에 발병하는데 초기 집중적인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국내 연구에 따르면 조현병 발병 후 치료를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DUP)은 약 56주로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추천하는 12주보다 5배가량 길다.

또 조현병 환자 52%는 진단 후 첫 6개월간 정기적인 외래치료를 받지 않는다. 이후 6개월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의료계에서는 발병 후 5년을 치료를 위한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로 보고 있지만, 발병 초기 치료가 미흡한 상황이다.

외래치료 중단은 정신질환의 악화와 재입원으로 이어지는데 2017년 기준으로 퇴원 후 1개월 내 외래방문율은 62%로 WHO 가입국의 중간값이 73%에 못 미친다. 재입원율은 37.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1∼13%와 격차가 컸다.

퇴원한 환자의 30일 내 자살률은 0.24%로 일반인의 10배에 달하는 등 자해 위험도 높다.

정신질환을 앓은 지 5년이 넘은 만성환자는 지속적인 치료와 재활을 통해 기능 저하를 지연시키고 일상생활을 유지해야 하지만, 지방자치단체 사례관리 인력 부족, 재활시설 부족 등으로 사는 지역에서 지속적인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

지역사회 정신건강 기초 인프라인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전국에 237곳이 있지만, 전북 임실군 등 5개 지자체에는 설치돼 있지 않다.

센터 내 중증정신질환자 사례관리 인력은 평균 4명으로 1인당 관리대상자가 60명에 달한다. 이런 인력으로는 집중적인 사례관리가 어렵고 신규 등록자 발굴은 더 힘들다.

인력 부족으로 센터 전문요원의 현장출동도 평일 주간에만 이뤄지고 있다.

정신재활시설은 수도권 편중이 심하다. 시설 348곳 가운데 179곳(51.3%)이 수도권에 있고, 시설이 없는 기초 지자체도 45.6%에 달한다.

응급상황에서 24시간 정신과 진료가 가능한 응급의료기관이 부족한 데다 환자가 조기에 퇴원한 후 출퇴근 형식으로 병원의 재활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낮병원’ 운영도 저조하다.

정신질환 총진료비는 2014년 3조8천억원에서 2017년 4조8천억원으로 3년 만에 1조원이 증가했고, 정신질환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도 매년 증가해 2015년 11조3천억원을 넘어섰다.

진주 방화살인사건 등 정신질환자에 의한 강력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정신질환자 치료·보호를 위한 국가의 책임이 강조되자 보건복지부는 이날 ‘중증정신질환자 보호·재활 지원을 위한 우선 조치방안’을 발표했다.

내년 중으로 17개 시도에 ‘정신건강 응급개입팀’을 설치해 정신질환이 의심되는 사건·사고 현장에 요원을 출동시켜 응급상황 대응력을 강화하고, 정신건강복지센터 인력을 빠르게 확충해 요원 1인당 관리대상자를 60명에서 25명으로 낮춘다는 것이 골자다.

또 지역 특성에 맞는 정신건강 정책을 시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발병 초기 환자에게 외래진료비를 지원하는 한편, 응급상황에서 조속한 입원 치료를 권장하는 등 적절한 응급대응과 지속적인 치료·보호 제공 방안이 제시됐다.

관건은 예산이다. 보건복지부는 광역시도에 예산을 포괄적으로 지원해 지역 특성에 맞는 서비스를 개발하도록 하는 ‘통합정신건강증진사업’과 응급개입팀, 정신건강복지센터 인력 확충 등에 필요한 내년도 예산은 예산당국과 협의가 된 상태라고 밝혔다.

권준욱 보건복지부 건강정책국장은 “정신건강 예산은 복지부 보건 예산의 1.5%에 머물고 있는데 인력 확충, 정신재활시설의 중앙정부의 개입 필요성을 고려하면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5%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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