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전원생활을 꿈꾸는 이들이 많다.조용한 곳에서 아담한 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며 여유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그러나 이렇게 머릿속으로 그려 보는 삶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상상의 대상으로서의 전원과 당면 현실로서의 전원은 다르다.나그네에게 농촌의 풍경은 그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고 한 없이 여유로워 보인다.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김을 매는 모습에 더 없는 정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 그림 속으로 뛰어드는 순간 그것은 고된 노동으로 바뀌게 된다.쟁기를 잡은 손에 쉽게 물집이 잡히고,쪼그려 앉아 풀을 뽑는 일 또한 초보자들에겐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고통을 안길 것이다.겉모습만보고 막연하게 농촌을 동경하고 준비 없이 뛰어들었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다.그래서 성급하게 결정하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알맞은 곳을 선택하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에서는 살 곳을 고르는 조건으로 네 가지(卜居四要)를 꼽는다.첫째는 지리(地理)다.지형이 한 세월 터 잡을만한 곳인가 봐야 한다.지세가 사람을 품어 안아 과연 들어앉을만한 자리인지 보라는 얘기다.둘째는 생업 조건(生利)이다.아무리 그림 같은 경치가 펼쳐진 곳이라고 하더라도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맹자가 말한 ‘항산(恒産)’의 기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인심(人心)이다.복잡한 도심 생활을 피해 찾는 것이 전원이지만,역시 사람과 섞여 살아갈 수밖에 없다.모든 사람이 나 홀로 ‘자연인’처럼 살 수는 없는 일이다.지리가 적당하고 생업 수단이 어지간하다 해도 좋은 이웃이 있어야 한다.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이 인심일 것이다.지리와 생업 조건이 괜찮다 해도 이웃과 불화하고 어울릴 수 없는 환경이라면 삶의 터전으로는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갖춰지면 보따리를 풀어볼만할 것이다.그러나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보태는데 바로 산수(山水)다.물 좋고 정자 좋은 곳 없다지만 딱딱한 조건만으론 2% 부족한 데가 있다.그걸 채워주는 것이 네 번째 조건이다.가까운 곳에 보고 즐길만한 자연의 정취가 있으면 성정(性情)을 다스리는 데 안성맞춤일 것이다.생각이 다르고 취향이 각각일 것이나 이쯤 되면 과연 명당(明堂)이라 해도 좋겠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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