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춘 원주우체국장

▲ 이용춘 원주우체국장
네덜란드 하면 ‘관용’이라는 단어가 가장먼저 떠오른다.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가 종교적 관용정책을 포기하면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 ‘낭트 칙령’을 폐지하는 대신 개신교를 불법화하는 ‘퐁텐블로 칙령’을 내리자 위그노(신교도)는 종교적 관용이 있는 네덜란드로 대거 모여들었다.당시 기업인,장인,기술자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던 위그노의 국외탈출로 프랑스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고,반면 관용적이고 개방적인 네덜란드는 위그노 난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국가발전의 기회로 삼았다.

에이미 추아 예일대 교수는 고대 페르시아와 로마를 시작으로 동양의 당과 몽골,서양의 네덜란드,영국,미국 등 세계 제국의 흥망사를 연구했다.추아 교수는 2007년 출간한 ‘제국의 미래’에서 강대국의 핵심 동인으로 군사력과 경제력 외에 더욱 근원적인 요소로 ‘관용’을 꼽았다.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종교,기술,정보,지식을 가진 인재가 모여야 한다.관용은 바로 이러한 것을 묶어주는 접착제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요즘 한창 이슈인 층간소음과 관련한 짤막한 글을 하나 소개한다.어린아이를 둔 신혼부부가 층간소음이 너무 싫어 아파트 꼭대기 층으로 이사해 살았다.평소 아이들에게 예의와 조심성을 가르쳤고,별 다른 문제는 없었다.며칠 동안 아이들과 부인이 외갓집에 가 있었는데,아래층의 노부부가 찾아와서 며칠째 아이들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아 행여나 아이들이 아프지 않느냐고 묻더란다.아이들의 아버지는 이 사건으로 깨달은 바가 컸고,아래층 노부부를 챙겨드리는 사이좋은 이웃이 되었다는 이야기다.노부부가 보여준 관용과 사랑이 우리 곁의 갈등을 해소한 아름다운 예다.

‘관견지누(管見之累, 대롱으로 하늘을 보는 어리석음)’를 원효 스님은 경계했다.가늘고 긴 대롱으로 보는 하늘은 좁게만 보인다.하늘은 무한함에도 보이는 것만 하늘이라고 믿는다.이에 반해 넓은 대롱으로 보거나,그냥 보는 하늘은 훨씬 크거나 무한하다.지식과 경험이 쌓이면 대롱이 굵어진다.질시,혐오,증오보다는 대화,타협,이해,배려가 있어야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다.

상선약수는(上善若水) 도덕경에 나오는 말로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이다.물은세상 만물에 생기를 주고 성장 하게하는 원천이다.아래로 흐르면서 막히면 돌아가고 기꺼이 낮은 곳에 머물며,둥근 그릇에도 네모난 그릇에도 담겨지듯 늘 변화에 능동적인 유연성을 가졌다.모든 생명체를 유익하게 해주지만 어떤 상대와도 다투지 않고 품어준다.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물과 같은 관용의 자세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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