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쌀이 남아돌아 걱정이지만 지난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쌀이 모자랐다.어떻게든 주식인 쌀 자급률을 높이는 것이 국가 과제가 됐다.요즘은 양보다는 질을 중시하는 시대가 됐지만 당시만 해도 배를 채우는 것이 우선이었다.당연히 식량 증산이 주요 국가 시책 가운데 하나였다.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최우선 과제일 것이다.이것은 세상이 아무리 달라져도 변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쌀은 먹는 것의 대명사다.쌀의 자급은 곧 식량주권을 확보하는 것을 의미했다.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정치의 기본이라는 점에서 쌀은 곧 정치의 핵심이기도 하다.다만 이것이 겉으로 드러나느냐 삶의 배경에 묻혀있느냐가 다를 뿐이다.식량자급이 필요했던 지난 70년대 초 등장한 것이 통일벼다.60년대 중반부터 개발에 착수해 농촌진흥청이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를 탄생시켰다.

통일벼는 인디카와 자포니카를 교잡한 품종으로 수확량이 월등한 대신 미질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다.그러나 이 통일 계통의 벼가 등장함으로써 쌀의 자급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그러나 쌀 생산량이 급격히 늘어나고 먹을거리가 다양해지면서 1980년대에 접어들자 통일벼는 그 역할을 다하고 퇴장하게 된다.지금은 오히려 남아도는 쌀을 걱정해야 하는 정반대의 입장에 서 있다.

쌀은 부족했던 과거에도,남아도는 지금도 정치의 핵심 키워드다.비단 나라 안 내부정치에 국한된 문제도 아니다.쌀은 작금 한반도 정세 변화에도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북한이 만성적인 식량부족을 겪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최근 북한의 노동신문은 “금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쌀이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언을 소개했다는 데서도 저간의 사정이 짐작 된다.

최근 유엔인구기금(UNFPA)의 세계 인구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남북한 기대수명이 11세나 차이가 났다.남한의 기대수명이 83세인데,북한은 72세에 불과했다.열악한 의료 환경과 식량 부족이 원인이라 한다.며칠 전 정부가 인도적 차원의 식량지원 검토 방침을 밝혔는데 북한의 이런 사정이 감안됐을 것이다.논란이 없지 않으나 잘만 쓰면 남북한 모두 과부족의 정치적 부담을 해결할 카드가 될 것이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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