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화 남 논설고문

 볕 좋은 오후 네 사람이 정자에 모여 앉아 한담을 나눈다. 행색이 남루하지 않은걸 보면 그럭 저럭 먹고사는 사람들 같고 입에 올리는 말투로 보아 글줄이나 읽은 식자층인 것 같다. "벼락 출세길이라도 잡아서 양주자사나 한 번 해먹었으면…" 한 사람이 그렇게 말하자 마주 앉은 사람이 받는다. "그까짓 벼슬이 뭐 그리 중한가. 나는 돈이나 많이 벌었으면 좋겠네" 그러자 또 한사람이 먼 하늘을 바라보며 말한다. "난 벼슬도 싫고 돈도 싫어. 학을 타고 하늘을 나는 신선이 되고싶어" 세사람의 말을 다듣고 나서 마지막 사람이 이렇게 중얼거린다. "난 아냐. 허리에 십만 관의 돈을 차고 학의 등에 앉아 하늘을 날아서 양주자사에 부임할 꺼야" 중국의 방대한 백과사전 격인 사문유취(事文類聚) 후집에 전해오는 대목이다. 천여년 세월 전에 기록된 글이지만 요즘세상 어느 다방이나 술집에서도 들을 수 있는 농담 따먹기 한 대목처럼 전혀 낯설지 않다. 권력과 돈 명예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이나 집착이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한다.
 권력을 잘 활용해서 나라를 살찌게 하고 백성들을 편안케 하면 명예는 저절로 그의 이름을 빛내고 오랜 세월 가문의 영광으로 남는다. 세종대왕이 성군으로 존경받고 미국의 링컨대통령과 케네디 대통령이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되는 것은 권력과 명예가 짝을 이룬 경우다. 돈도 그렇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말처럼 축적한 부로 꼬박꼬박 세금 잘내고 좋은 일에 돈을 써서 나라를 이롭게 하고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면 부와 명예가 함께 빛을 낸다. 강철왕 카네기와 석유로 떼돈을 번 록펠러가 두고두고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 것은 그들이 번 돈을 바르게 썼기 때문이다.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좀처럼 함께 빛나지 않는 것이 권력과 돈이다. 권력이 돈까지 움켜쥐면 그 권력은 십중팔구 부패한다. 돈이 권력을 손에 넣으면 돈도 권력도 함께 썩어서 금세 악취를 풍기게 된다. 그러니까 돈과 권력은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만나지 말아야 한다. 권력과 돈과 명예가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아름답고 고귀한 화합물을 만들어낸 경우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 돈을 쓴 경우나 손에 넣은 권력을 휘둘러 돈을 긁어모은 경우나 아무리 귀신도 모르게 했다 하더라도 그 썩는 냄새가 언젠가는 새나가게 마련이고 마침내 온 나라 온 백성이 코를 틀어막고 손가락질하는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권력을 창출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모으고 끌어모은 돈을 다시 여기 저기에 뿌린 사람들이 한결같이 변명하는 말은 대가성 없는 정치자금이고 권력을 이용해 이돈 저돈 가리지 않고 꿀꺽꿀꺽 삼킨 사람들도 들통이 나면 역시 대가성 없는 정치자금이었다고 둘러댄다. 죽은 소가 웃을 노릇이지만 그 뻔뻔함에 백성들은 웃을 수가 없다. 재임시절 권력을 이용해 수천억원을 삼킨 대통령이 삼킨 돈 게워내라는 법의 심판을 받고도 '배 째라'는 식으로 버티고 있는 세상이니 최고 권력의 그늘에서 콩고물 팥고물로 수억원대를 삼킨 가신들이 백성들 앞에 꼿꼿하게 고개들고 능글능글 웃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무소불위 막강한 권력을 쥐고 국정을 이끌면서 그 국정을 빙자하여 거액의 검은 돈을 움켜쥔 사람들이 권좌에서 물러난 후 하나 하나 사법기관에 불려와 조사를 받고 있지만 하나같이 결백을 주장하고 하나같이 나는 아니라고 발뺌한다. 하지만 뻔뻔스런 그들의 모습에서 백성들은 권력과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잃고 벼랑 끝에 선 건달들의 모습을 연상할 뿐이다. 허리에 10만관의 돈을 차고 양주자사에 부임했건 양주자사에 부임해 10만관의 돈을 허리에 차게 되었건 그들은 지금 권력형 비리에 얽힌 피의자 신분으로 법의 심판대에 오른 것이다.
 그러나 날개 없이 추락하는 그들의 모습보다 더 딱하고 불행한 것은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양주학'을 타고 거드름 피우던 사람들이 줄줄이 쇠고랑 차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백성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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