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림·시인(홍천 출신)

무어라도 돼라

그게 엄마의 좌우명이었다

콩나물 키워 열두 가지 반찬 만들고

아구든 아귀든 강냉이든 옥씨기든 올갱이든 고디든

먹도록 만들어 상 위에 올리는 것

그게 엄마가 할 줄 아는 전부였다

노상 소핵교만 졸업했어도

무엇이든 됐을 거라는 말

게우 소핵교 이학년도 다니다 말고

부엌떼기로 들어섰다가

위안부 소녀들 공출해 간다고

한동안 도광동에 숨어 살면서도

콧구멍이 새까맣도록 고골에 불을 피워 상을 차렸다는

그 먼 날들을 들려주며 뭐든 돼라 했는데

돌아보니 온 길도 없고

내다보니 갈 길도 아물거려

주저앉고 말았다

시인은 되는 게 아니라고

엄마는 말할 뻔했는데

뭣 땜에 그랬는지

엄마가 간 하늘이 붉은 것을 보니

엄마도 생각이 참 많았겠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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