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성 변호사

박찬성 변호사
박찬성 변호사
어느 기관에서 인권침해로 고충신고가 접수되었다.‘아랫사람’ 몇몇에게 모독적 발언을 습관적으로 늘어 놓았고 한 번은 그 중 한 명의 발치에 유리컵을 집어 던졌단다.피신고인의 진술을 들어보기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거침없는 권위주의적 ‘포스’를 온몸에서 뿜어내면서 ‘드높으신’ 피신고인이 걸어 들어왔다.

첫 마디부터 고성의 연속.“이게 지금 뭐하자는 거요? 어? 당신은 또 뭐고? 당신이 검사야? 이게 뭐야,지금.어? 검사도 아니면서 제깟 놈이 뭐라고” 이럴 때는 당황하지 않고 또박또박 대답하는 것이 최선이다.“예.저는 검사는 해 본 적 없고요.이 자리는 접수된 사안의 사실관계에 관해 질문을 드리고 그에 대한 말씀을 듣기 위한 것입니다” “뭔 놈의 사실관계? 어? 물어보시든가.말든가”

질문이 시작되자 상황은 점입가경이 되었다.“미쳤어요? 사람한테 유리컵을 던져?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여?” “허,참.내 살다 살다.어디서 이런 애송이 같은 걸 데려다 놓고.그래,좋아.내 지금 기관장을 만나러 갈 거에요.내가 못 참겠는데 이거를”

아마도 이 분은 이 ‘애송이’ 같은 ‘제깟 놈’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아이고,제가 높으신 분을 미처 못 알아 뵈었습니다.부디 노여움을 푸십시오”라고 할 줄 알았을 터.도리어 눈싸움을 하듯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네.그렇게 하십시오.그런데 이 사건의 모든 절차가 종결되면 그때 뵙도록 하십시오.그리고 저는 이 기관의 규정에 따라 조사권한을 위임받았습니다.말씀 함부로 하시는 일은 삼가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 날 조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필자를 대놓고 업신여기는 태도는 쭉 이어졌다.

며칠 후의 일이다.전화가 걸려왔다.그 분이었다.호칭부터 달라졌다.“아이고,변호사님.큰 결례를 범했습니다.제가 누군가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데,제가 진짜 뭘 잘 모르고 주제 넘었습니다.제가 나이가 들어서 노망이 났는지.변호사님께서 너그럽게 보아주십시오.피해자에게 사과도 하고 피해회복을 위한 노력도 성심성의껏 하겠습니다.무엇보다도 변호사님께 잘못했습니다.죄송합니다” 필자가 경험해 본 중 가장 비루하다고 할 정도의,낮추고 또 낮추는 모습.죄송하다고,백 번 천 번 잘못했다고 하는 말을 이 날처럼 많이 들었던 날은 아마도 다시는 없을 것 같다.

이 전화를 받으며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되는 누군가에게 그 ‘알량한’ 권력을 휘둘러 대면서 폭군이 된다는 것은,자신보다 강해 보이는 혹은 무언가 권능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또 다른 누군가의 앞에서 한없이 비굴해지는 것과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는 사실.그래서 타인을 존중하는 것은 결국 무엇보다도 바로 ‘나’를 위한,‘나’ 자신을 오롯이 존중하고자 하는 노력이기도 한 셈이다.이를 명심한다면 세상의 수많은 터무니없는 ‘갑질’과 인격모독 행위들도 상당한 정도는 줄여나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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