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최대 격전지 그곳에 427개 삶의 터 있었다
1953년 정전협정 DMZ 탄생
군사분계선 중심 2㎞ 구간 설정
전체 면적 원주시 넓이와 비슷
박격포진지·GP 등 군시설 설치
도 183개 마을 가옥 2388동 존재
양구 문등리 등 다수 주민 거주
전쟁 발발후 황급히 피난길 올라

▲ 지난 5일 군사분계선과 맞닿은 고성 최동북단 감시초소(GP)를 본사 기획취재진이 군장병의 안내를 받으며 진입하고 있다.현재 국방부가 문화재로 등록한 이 초소는 지난 9일부터 유엔군사령부의 방침에 따라 돌연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최유진
▲ 지난 5일 군사분계선과 맞닿은 고성 최동북단 감시초소(GP)를 본사 기획취재진이 군장병의 안내를 받으며 진입하고 있다.현재 국방부가 문화재로 등록한 이 초소는 지난 9일부터 유엔군사령부의 방침에 따라 돌연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최유진


1953년 7월 27일.‘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 체결된 이날을 기점으로 1129일간의 6·25한국전쟁이 일단락되면서 비무장지대(DMZ·Demilitarized Zone·非武裝地帶)라는 새로운 지역이 탄생했다.정전협정과 동시에 반세기 넘게 사람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은 곳이 DMZ이다.그 세월이 올해로 66년째다.본지는 비무장지대 탄생과 함께 사라져 간 DMZ마을에 눈을 돌렸다.특별기획 ‘비무장지대,사라진 마을을 찾아서’는 DMZ이 그어지기 이전 이곳에서 터를 잡고 살았던 실향민들의 이야기와 사라진 마을의 자료를 발굴하기 위해 기획됐다.남북평화시대를 맞아 비무장지대 내 마을 복원방안과 활용법도 해외사례를 통해 제시한다.특히 이번 기획취재는 유엔군사령부와 국방부,철원·양구·인제·고성 등 강원도 내 비무장지대를 관할하는 군부대의 협조를 얻어 60여년간 민간인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군사분계선 일대를 둘러보고 사라진 마을의 현재 상황을 총 10회로 나눠 보도한다.


1. 프롤로그

강원도와 경기도를 걸치고 있는 군사분계선에서 남·북으로 각각 2km씩,총 4km의 폭을 두고 펼쳐진 비무장지대(DMZ)는 6·25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를 벌인 격전지였다.하지만 이곳에는 전쟁 이전까지 줄잡아 400여곳의 마을이 있었고 많은 사람이 평안하게 거주하던 삶의 터전이었다.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황급히 피난을 떠난 실향민들은 60여년간 귀향을 꿈꿨지만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다.그리고 점차 그때 그 마을에 대한 기억과 기록도 사라지고 있다.취재대상지가 남북한이 대치하는 공간적 특수성으로 인해 현장접근이 어려운 현실적인 한계도 있다.그나마 이제 70대 후반에서 80대 노년층이 되어버린 생존 실향민 상당수가 어린시절 뛰놀던 고향의 추억을 뚜렷이 간직하고 있어 다행이다.하지만 그 시간도 이제 얼마남지 않았다.소년시절의 시간에 멈춰서 있는 생존자들의 구술과 일제강점기 기록물을 토대로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마을의 기록을 찾아 나서본다.

 

#정전협정과 DMZ

3년간의 치열한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군사정전협정이 체결된지 올해로 66년째를 맞는다.정전협정은 임진강 하구에서 부터 시작하여 동해안 고성 명호리에 이르는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한 2km씩 후퇴한 군사적 완충지대인 비무장지대(DMZ)의 탄생을 알렸다.군사분계선 표식물은 임진강 강변에 세워진 제1호부터 동해안 바닷가와 맞닿은 고성 명호리 지점에 박힌 1292호까지 흑색글씨에 황색표시로 설치돼 있다.표식판 1292개 중 696개는 유엔군의 관리책임이고,596개는 북한과 중국의 관리책임이다.

4km의 폭을 두고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DMZ 면적은 한반도의 250분의 1 규모인 900㎢ 내외로,원주시 전체면적과 흡사하다.남한면적만 보면 행정구역별로 강원도 300㎢,경기도 148㎢ 등 총 448㎢ 가량이다.

이 지역은 현재 북측의 경우 박격포진지,고사포진지,대전차포진지를 총 300여곳에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고 땅굴과 지뢰지대,관측소(Observation Post·OP) 및 감시소(Guard Post·GP) 282개(2018년 11월 GP철수이전),방송시설 100여개 등을 갖췄다.남측도 OP와 GP 100여개,방송시설 107개 등 북측의 3분의 1 수준의 시설을 설치해 ‘비무장지대’라는 명칭을 무색케 한다.특히 DMZ에는 약 100만개 이상의 지뢰가 매설되어 있어 이 지역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지뢰제거작업이 선행돼야 할 과제이다.

 

▲ 고성 GP에서 바라 본 군사분계선(MDL) 표식. 사진 공동취재단
▲ 고성 GP에서 바라 본 군사분계선(MDL) 표식. 사진 공동취재단

#사라진 마을

한국전쟁을 종식하기 위해 한반도의 허리에 그어진 비무장지대는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냉전시대의 산물로 남겨져 있다.하지만 6·25한국전쟁 이전 상황으로 돌이키 보면 이 지역은 평화롭게 정주생활이 이루어진 일상적인 생활공간이었다.강원대 DMZ HELP센터가 1910년대 지형도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비무장지대 내 존재했던 마을은 427곳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행정구역별로는 강원도 183곳(43%),경기도 244곳(57%)의 마을이 분포한 것으로 파악됐다.가옥수는 부속건물을 포함하여 강원도 2388동,경기도 2238동 등 약 4600동이었다.마을단위 평균가옥수는 평균 10.9동으로 나타났고 철원군 금곡리는 53동으로 가옥의 숫자가 가장 많은 지역으로 조사됐다.강원도 내에서는 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 등 5개군이 북한과 맞닿은 접경지역이다.이중 화천은 지형상 군사분계선과 DMZ 공간 없이 민간인통제선에 포함된 접경지역이다.반면 고성은 DMZ를 경계로 남고성,북고성으로 불릴 정도로 전형적인 분단 군(郡)지역으로 꼽힌다.

비무장지대 설정 이전까지 많은 주민이 거주했던 대표적인 마을은 철원 김화읍,양구 수입면 문등리,인제 가전리,북고성 신대리·사비리·덕산리·대강리 등이 있다.이들 지역은 6·25전쟁 전까지 10여가구 내지 50여가구가 모여 살았고 학교와 파출소,우체국 등 관공서도 있었다.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벼농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농민도,바닷가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도,일자리를 찾아 광산으로 몰려든 광부도 이들 지역에 거주했다.일제강점기 광물수탈을 노린 일본인들도 쉽게 볼 수 있었다게 실향민들의 증언이다.금강산으로 가는 도로와 기찻길이 뚫릴 정도로 번화한 면소재지 마을도 존재했다.

6·25전쟁 중 피란을 왔다가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실향민들은 “군사분계선에서 고향땅이 눈에 들어오는데 아직까지 가지 못하고 있다”며 “6·25전쟁 이전까지 풍요롭고 평안하게 살았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고 회상했다. 박창현·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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