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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군사적 요충지 지켜낸 풍차의 나라 영웅

[주말매거진 OFF] 횡성 네덜란드군 참전기념비
한국전쟁 최격전지 횡성전투
적군 점령 방어한 네덜란드군
오우덴 중령 등 총 117명 전사
매년 추모행사 갖고 희생 기려

정태욱 tae92@kado.net 2019년 06월 13일 목요일
▲ 횡성군 우천면 참전공원에 위치한 네덜란드 군 참전 기념비는 국방부가 한국전쟁때 희생한 네덜란드 군을 추모하기 위해 지난 1975년 건립했다.
▲ 횡성군 우천면 참전공원에 위치한 네덜란드 군 참전 기념비는 국방부가 한국전쟁때 희생한 네덜란드 군을 추모하기 위해 지난 1975년 건립했다.

횡성은 사통팔달의 지리적 특성상 수많은 외침과 시련을 겪어왔다.한국전쟁 당시도 교통 요충지로서 뺏고 빼앗기는 격전장으로 고통을 받았다.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횡성에서의 한국전쟁 실상과 먼 바닷길을 건너와 남한을 지키다 횡성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네덜란드 군의 자취를 살펴본다.

▲ 국방부가 지난 1956년 횡성군 횡성읍 삼일공원에 건립한 오우덴 중령 충혼비.
▲ 국방부가 지난 1956년 횡성군 횡성읍 삼일공원에 건립한 오우덴 중령 충혼비.

# 횡성에서의 한국전쟁

1950년 6월25일 일요일 새벽 북한의 기습 도발로 한국전쟁이 발발했다.횡성 역시 개전 10일만인 같은 해 7월5일쯤 북한군 사단급 병력의 기습공격에 점령당했다.북한군의 급작스런 남침에 군민들은 제대로 피난도 못하고 주위 산으로 대피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아군과 미군이 북한군의 군사적 요충지가 된 횡성읍 시가지에 폭격기를 이용한 융단폭격을 감행,전쟁 초기부터 횡성은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그러다 낙동강까지 밀렸던 아군이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에 힘입어 북진,국군 제6사단이 같은 해 9월30일 횡성을 회복했다.하지만 이듬해 1월 중공군 개입으로 전세가 역전,1·4후퇴가 시작되면서 서울에 이어 횡성 역시 북한군에 또다시 점복됐다.그나마 이전의 기습공격에 대한 경험 등으로 상당수 군민들은 충청북도 남부지역 등지로 피난할 수 있었다.

1·4후퇴 당시 중공군과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 중 하나가 횡성 일원이다.중공군의 대병력이 횡성 일원인 삼마치 고개에서 국군 8사단을 겹겹이 포위하고 이 포위망을 뚫기 위해 일주일간 중공군 그리고 추위와 싸우다 수천 명의 아군이 희생됐다.미군이 삼마치 일대를 학살의 계곡이라 부르게 된 이유다.하지만 국군 8사단은 네덜란드 군과 미군 187공수여단 전차소대,한국군 보병 1개 대대,공군기 등의 지원을 받아 극적으로 무사히 구출,승전보를 위한 북진에 나서게 된다.

▲ 횡성 네덜란드군 참전비 추모행사가 지난달 9일 횡성참전기념공원과 보훈공원에서 로디 엠브레흐츠 주한 네덜란드 대사,오진영 서울보훈청장,박두희 부군수 등 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횡성 네덜란드군 참전비 추모행사가 지난달 9일 횡성참전기념공원과 보훈공원에서 로디 엠브레흐츠 주한 네덜란드 대사,오진영 서울보훈청장,박두희 부군수 등 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횡성과 네덜란드 군

네덜란드 군은 한국전쟁 당시 ‘횡성전투’에서 맹활약하면서 유엔 참전국이자 친구로서의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

1950년 11월 부산항에 도착한 네덜란드 군(대대장 마리뉴스 P 에이덴 오우덴 중령) 1400여명의 병력은 1·4후퇴 당시인 1951년 1월 횡성군 갑천면 초현리에서 첫 전투를 벌였다.이어 일시 남하했다가 재북상하면서 1951년 12월12일 횡성읍 북천리 공동묘지 인근 야산(현 중앙아파트 일대)에서 대규모 북한 및 중공군과 맞붙어 공방전을 벌였다.

이틀간의 치열한 전투에서 소수 병력으로 대규모 북한 및 중공군 병력을 대적하기 힘겨웠던 네덜란드 군은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 횡성감리교회로 퇴각했다.교회에서는 총격을 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도주의적 발상에서였다.그러나 북한군은 아군으로 위장하고 지원군으로 가장해 교회에 접근,방심을 틈타 총공세를 벌였다.

이 전투에서 네덜란드 군은 오우덴 중령을 비롯 대부분 전사했다.네덜란드 군이 횡성에서 치열한 전투에 임한 것은 교통 요충지인 횡성이 점령되면 서울과 원주까지 연쇄 북한 점령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실제로 네덜란드 군의 이 같은 희생으로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반격의 기회를 갖는 등 전쟁의 양상이 바뀌었다.네덜란드 군은 한국전쟁에서 전사자 117명을 비롯해 768명의 고귀한 희생을 감수했다.정전 후에도 곧바로 철수하지 않고 전쟁 재발과 전후 복구를 위해 헌신한 뒤 개선했다.

국방부는 지난 1956년 횡성읍 보훈공원에 오우덴 중령(대령 추서)과 병사들을 기리는 오우덴 중령 충혼비와 지난 1975년 횡성군 우천면 참전공원에 네덜란드 참전 기념비를 세우고 매년 네덜란드 대사관,횡성군민 등과 함께 추모행사를 열고 있다. 정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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