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베주 가벤시스 원주민 마을
새마을운동 통한 생태환경 보전
작물생산·가공기술 수년간 지원
감사표시 명예추장 대관식 거행

▲ 적정농산물 재배를 위한 야외 토론회를 하는 우리 팀과 파푸아뉴기니 농업기술원 연구원들.
▲ 적정농산물 재배를 위한 야외 토론회를 하는 우리 팀과 파푸아뉴기니 농업기술원 연구원들.

1960년대 중고 학생시절 때다.배낭을 메고 세계를 누비며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배달해 주던 김찬삼 교수의 세계 여행기에 빠져 있었다.그가 아프리카 원주민 마을을 지나면서,명예추장으로 추대되는 모습은 존경과 부러움 그리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적인 마음을 불러일으킨 불쏘시개였다.거의 40년이 넘도록 잠재돼 있던 이러한 호기심이 탐구심으로 변해 제자인 김광종 박사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뉴기니 섬의 동쪽을 차지하고 있는 파푸아 뉴기니의 밀림 속으로 떠났다.

우리는 파푸아 뉴기니의 중앙 산악지대 원주민들의 삶을 보기 위해 4인승 경비행기로 열대우림 상공을 낮게 날고 있었다.화전을 위해 숲을 태우는 연기가 수없이 정글 위로 솟아올랐다.두어 시간 뒤에 자갈 활주로에 내려 가이드를 만나 오웬 스탠리 산맥의 4000m 급 산을 끼고 여러 원주민 마을을 도보로 종단할 계획이었다.마을들을 지나면서 만난 주민들은 직계와 방계가족이 모여 사는 대가족이었다.그리고 목제 쟁기인 호미와 괭이로 주식인 고구마와 마 등을 재배하는 등 원시적인 생활이었다.또한 나무끼리 비벼 생기는 마찰열로 불씨를 얻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 가벤시스 새마을 에코로지 준공을 기념하는 마을 주민의 무용.
▲ 가벤시스 새마을 에코로지 준공을 기념하는 마을 주민의 무용.



마을입구에 닿을 무렵,갑자기 몸에 다양한 색칠과 풀로 위장한 창을 든 남자들이 북소리와 함께 위협적인 모습으로 우리를 에워쌌다.우리를 놀라게 하려고 매복하고 있던 이들은 모두 맨발로 온통 상처투성이였다.밤이 깊어 소변을 위해 밖에 나오자,창을 든 두 명의 젊은이가 우리를 밤새 지켜주고 있음에 움찔했다.

이렇듯 짧은시간 정글에서 만난 그들의 삶의 모습에서 같은 시대의 첨단적인 도시인들과의 시공간적인 간격이 1만년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크게 벌어진 시간 간격을 줄여주는 방안을 찾았다.이를 위해 강원대 박철호 교수와 한국농수산대학 장광진 교수 등으로 팀을 짰고 모로베 주의 가벤시스 원주민 마을에 새마을운동을 통한 생태환경을 보전하고 마와 고구마 등의 작물생산과 가공기술을 다년간 지원했다.그들의 독특한 관습적인 토지소유제도 등으로 새마을 에코로지와 가공시설 건설에 문제가 있기는 했으나 드디어 소정의 목표를 달성한 날이 왔다.

이날 아침,우리들은 추장의 안내로 마을입구로 향했다.평소에는 자유롭게 드나들던 마을 입구에 바나나 잎 등으로 임시로 만든 문이 가로막고 있었다.그러자 문안에서 당신들은 누구이며 무엇하러 왔는가 하는 질문이 나왔다.이에 추장이 미리 알려준 대로 큰 소리로 “한국에서 왔으며,이 마을을 도우러 왔다”고 외쳤다.그러자 바로 문이 열림과 동시에 창과 활로 무장한 용사들이 우리를 향해 찌를 듯한 기세로 달려오더니,우리 바로 앞에 멈춰 예의를 표하며 우리들을 호위하며 나아갔다.

이미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수백 명의 마을주민들과 어린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7인조 악단의 연주와 동시에 일제히 전통 차림의 남녀노소가 괴성을 지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이어 ‘우리는 하나의 민족,하나의 국가’라고 하는 노래가사를 들으며 이 나라 언어가 무려 865여개가 넘는다는 사실을 되새기고 있었다.

▲ 명예추장 대관식을 마친 전운성 교수 모습.
▲ 명예추장 대관식을 마친 전운성 교수 모습.



건장한 청년이 마을을 대표해 깃털과 짐승 털로 화려하게 장식한 둥근 모자를 무릎 꿇고 정중히 나에게 바치는 것이었다.말하자면 ‘명예추장 대관식’이었던 것이다.사실 이러한 행사가 있을 것이란 말에 전날 미리 잔치용으로 큰 돼지 한 마리를 기증해 놓았었다.이렇게 시작된 마을 축제는 한나절 이어졌다.이는 다름 아닌 그간 이 마을에 전개한 우리의 진정어린 노력에 대한 그들의 감사 표시였다.

이러한 그들에 대한 감사와 열정을 느끼면서 파푸아뉴기니의 원주민 청년이 “백인은 왜 부자가 되었고,뉴기니인은 왜 가난해야 하는가?” “백인은 왜 짐(재산)이 많고,뉴기니인은 왜 짐이 없는가!”라는 질문에 고민하던 미국의 다이아몬드 교수가 30년에 걸쳐 쓴 ‘총,균,쇠’라는 책으로 답변했다고 하는 말이 가슴에 와닿고 있었다.즉,파푸아뉴기니의 낮은 수준의 삶은 인종과 종족적 열등성에 오는 것이 아니라,지리환경적 영향에 의해 결정됐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생각을 덧붙이면 사실 이들은 2중으로 고립돼 있었다.즉,남태평양의 섬으로 고립돼 있을 뿐만 아니라 열대우림속의 산악지대와 다양한 지형에서 오는 또 하나의 고립성을 지니고 있었다.작년 여름 뉴기니 섬의 인도네시아 영토인 파푸아 주의 같은 멜라네시아 원주민 마을을 찾았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즉,부의 차이는 원주민의 언어문화적인 다양성은 풍부했으나,개방성이 부족한 것에서 오는 결과라는 것을 실제로 목격할 수 있었다.


전운성 강원대 농업자원경제학과 명예교수
△강원대 농학과 졸업△고려대 농경제학 석사△일본 큐슈대학 농경제학 박사△전 한국농업사학회 회장△전 미국 예일대학 농민연구소 객원교수△전 강원대 농촌개발연구소 소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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