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없는 살인사건' 가능성…우발적 범행 주장 인용되면 집행유예까지
검찰, 청주 의붓아들 의문사도 병행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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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전 남편 살해사건 피의자 고유정(36·구속)이 범행을 저지른 지 한 달이 됐지만, 피해자 시신이 아직 발견되지 않아 수사가 장기화하고 있다.또 고씨가 ‘우발적 범행’을 주장하며 정확한 범행 동기와 수법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어 수사를 마무리하기까지는 상당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 범행 발생부터 유기까지…보름 전부터 계획

고씨는 범행에 쓸 도구를 사전에 준비하고, 살인에 대해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경찰이 그동안 확인한 고씨의 행적을 보면 고씨는 지난달 9일 아들 면접교섭 관련 재판 때문에 법원에서 전남편 강모(36)씨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범행일인 지난달 25일이 면접교섭일로 정해졌다.

면접교섭 재판 다음 날인 지난달 10일부터 고씨는 인터넷으로 범행 도구나 시신 훼손·유기 방법에 대해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고씨가 이때부터 범행을 계획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17일에는 고씨가 충북 청주 자택에서 20㎞ 떨어진 한 병원에서 졸피뎀 성분이 든 수면제를 처방받아 병원 인근 약국에서 약을 구입했다.

고씨는 지난달 18일 배편으로 본인의 차를 갖고 제주에 들어왔다. 시신 훼손에 쓸 도구도 청주 주거지에서 챙겨왔다.

제주에 온 지 나흘 만인 지난달 22일 오후 11시께 제주시의 한 마트에서 칼, 표백제, 고무장갑, 세제, 청소용 솔, 세숫대야 등 범행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물품을 샀다.

범행 당일인 25일 강씨를 만나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펜션에 입실한 뒤 범행을 저질렀다.

고씨는 다음날 시신을 훼손·분리한 뒤 하루 지나 훼손한 시신을 종이상자와 스티로폼 상자 등에 담아 펜션에서 퇴실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 지난달 28일 제주시의 한 마트에서 종량제봉투 30장, 여행용 가방, 비닐장갑 등을 사고, 시신 일부를 종량제봉투에 넣은 후 같은 날 오후 8시 30분 출항하는 완도행 여객선을 타고 제주를 빠져나갔다.

경찰은 여객선 폐쇄회로(CC)TV로 고씨가 해당 여객선에서 피해자 시신이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봉지를 7분간 바다에 버리는 모습을 포착했다.

고씨는 완도항에 내린 후 곧바로 경기도 김포시 소재 가족 명의의 아파트로 향했으며, 지난달 29일 새벽 도착했다.

고씨는 이틀간 김포에서 시신을 2차 훼손하고 지난달 31일 새벽 김포 아파트의 쓰레기수거함에 피해자 시신이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쓰레기봉투를 버린뒤 청주의 주거지에 갔다.

그리고 이튿날인 지난 1일 오전 마침내 고씨가 청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긴급체포돼 제주동부경찰서로 압송되면서 범행은 막을 내렸다.

◇ '시신없는 살인사건' 가능성…우발적 범행 주장 인용되면 집행유예까지

고유정 사건 발생 한 달째. 사건의 실마리를 풀 열쇠는 전남편 강씨의 시신이다.

사건 발생 한 달이 되도록 피해자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으면서 고씨의 형량이 낮아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찰은 이달 중순께 경기도 김포시 소각장과 인천 서구의 한 재활용업체에서 뼈 추정 물체를 발견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지만, 피해자 유해일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다.

전 남편 살해사건을 경찰로부터 넘겨받은 검찰은 시신이 없어도 고유정의 혐의를 입증하는 데는 큰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피해자의 DNA가 발견된 흉기 등 증거물이 총 89점에 달하고, 고유정 역시 일단 살인혐의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씨가 전 남편과 자녀의 첫 면접교섭일이 지정된 다음 날부터 보름간 범행을 계획한 정황도 드러났다.

경찰은 지난 11일 열린 최종 수사브리핑에서 고씨가 제주에 오기 전 졸피뎀 성분의 수면제를 처방받아 구입하고 제주에 온 뒤 마트에서 범행 도구를 구입한 점, 범행 전 범행 관련 단어를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차량을 제주까지 가져와 시신을 싣고 돌아간 점 등을 계획적 범죄의 근거로 설명했다.

경찰은 고유정이 전 남편과 자녀의 면접교섭으로 인해 재혼한 현 남편과의 결혼생활이 깨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등 피해자의 존재로 인해 갈등과 스트레스가 계속될 것이라는 극심한 불안 때문에 범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문제는 고유정이 "전남편인 강씨가 성폭행하려고 해 이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살해하게 된 것"이라며 우발적 범행을 주장하면서 형량이 낮춰질 우려가 있다는 데 있다.

앞으로 검찰이 보강 수사를 통해 고씨의 범행 동기와 계획범행 등에 대해 얼마나 충실히 입증해내느냐에 따라 재판 결과가 극명히 나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의 경우 검찰과 고유정 측은 피해자에게 귀책 사유가 있는 참작 동기 살인인지 또는 극단적 인명 경시 살인인지 여부를 놓고 재판에서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고유정의 경우 계획적 살인, 사체 손괴, 잔혹한 범행수법, 반성 없음, 사체 유기 등이 모두 인정될 경우 형량이 더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전남편의 성폭행 시도로 인한 우발적 살인이라는 고유정의 주장이 참작할 만한 이유로 인용될 경우 형량이 최저 3년까지 내려가 집행유예도 가능하다. 고유정은 붕대를 감은 오른손에 대해 증거보전신청을 해놓고 있다.

이와 관련, 권범 변호사는 "범행 동기와 수법이 법원에서 입증된다면, 범행수법 등이 나쁘고 사체 유기와 손괴 등 범행 후 정황도 매우 좋지 않다. 또 유족이 강력한 처벌을 원하고 사회적 비난 가능성도 높다"며 "여기에 고씨가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면 최고 사형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그러면서 "고유정이 주장하는 우발적 범행이 모두 받아들여 진다고 할 때 집행유예 처벌을 받을 수 있지만, 현재로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제주지검은 앞서 지난 20일 이번 사건에 대한 보강수사를 이유로 2차 구속 만기일인 오는 7월 1일까지 수사를 연장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고씨와 재혼한 현재 남편이 고씨를 상대로 제기한 '의붓아들 사망' 사건에 대해 고소인인 현 남편에 대한 조사를 마쳤고, 현재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청주상당경찰서, 청주지검과 협의를 하며 이첩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씨는 지난달 25일 오후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펜션에서 전남편 강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를 받는다.

고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살인, 사체손괴, 사체유기, 사체은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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