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정라동은 1만명이 채 되지 않는 주민이 살고 있는 동해안에 접해 있는 마을이다.북쪽에는 광진산이 솟아있고,남쪽에는 동해로 흐르는 오십천이 있다.일제 강점기인 1915년 일찌감치 이 마을에는 부두가 들어섰다.삼척의 작은 항구는 세월이 흘러 지금은 5000t급 2척을 비롯 5척을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제법 큰 항구가 됐다.

이 마을에 하나의 전설이 있다.어느날 호대사(虎大寺)라는 절에 사는 중이 연못에 있는 물고기를 먹고싶은 욕심에 몇 마리 잡아 바위뒤에 숨어서 구워먹다가 벼락이 쳐서 돌더미에 깔려 죽었다고 전해진다.그 자리가 동대지(東臺池)라는 연못이고,그 옆에 벼락바위가 생겼다는 것이다.‘정라(汀羅)’는 지명도 물의 가장자리(汀)에 그물(羅)을 놓는 것을 의미하니까,전설에 나오는 연못의 물고기든 동해바다에서 잡히는 물고기든 모두 그물과 연관된 얘기인 듯싶다.

정라동 해변에는 역사문화 명소가 있다.이사부 기념공원이 그것이다.이사부는 삼척의 옛 지명인 실직군주로 우산국(울릉도)을 정벌한 장군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강원도민일보에 의해 독도 수호의 상징으로 재탄생한 이사부는 사자상 등을 갖춘 기념공원으로 관광객을 맞고 있다.매년 열리는 이사부 축제는 삼척의 대표적 역사문화 축전으로 자리잡았다.

정라항이 지금의 삼척항이다.요즘 그동안 조용했던 삼척항이 무척 부산하다.북한주민이 타고 있던 목선이 해경 등의 제지도 없이 이른바 ‘해상 노크귀순’을 했기 때문이다.국민들은 아무리 작은 목선이라도 삼척항까지 내려와 그것도 정박해 직접 주민과 맞닥뜨리기까지 몰랐다는 사실에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야당 등 정치권은 연일 안보에 구멍이 났다며 공세를 펴고 있다.현장방문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삼척항에 상륙할 당시 북한주민의 모습이 촬영된 동영상을 보면,마치 한적한 항구에 잠시 배를 대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듯 보이는 것은 왜일까.그저 안보의식이 약해진 탓일까.아니면 그동안 일상에서 많은 탈북민들을 접하면서 담담해진 현실 때문일까.

천남수 사회조사연구소장 chonns@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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