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증발하면 주변의 공기가 시원해진다는 사실을 알아낸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를 이용해 실내 온도와 습도를 맞췄다고 한다.2세기경 중국 한나라에서는 황제가 시원하게 여름을 날 수 있도록 수동으로 팬을 돌려 일으킨 바람으로 물을 빨리 증발시키는 장치를 고안해 내기도 했다.산업혁명을 이뤄낸 19세기 영국에서는 고압으로 압축된 액체 암모니아를 급격하게 팽창시키면 기체 암모니아로 변하면서 주변의 공기가 차갑게 바뀌는 현상을 찾아냈다.현대인들이 한여름을 나기 위한 필수품인 현대적 에어컨의 작동원리를 발견한 것이다.

에어컨 상용화는 미국에서 최초로 성공했다.기계설비 회사에서 일하던 신입직원 윌리스 캐리어는 한여름 무더위와 습기로 인해 종이가 수축되면서 인쇄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출판회사의 애로를 듣고 습기를 잡는 장치를 발명했다.습기에 이어 열을 잡는 냉각시스템도 개발한 캐리어는 1915년 우리가 알고 있는 ‘캐리어’에어컨을 만드는 회사를 설립한다.

전기에너지가 낮과 밤의 구분을 없애고 실내와 실외,지상과 지하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시간과 공간의 활용을 늘렸다면,에어컨의 본격적인 보급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여름을 인류에게 선물한 것이라 할 수 있다.너무 더운 여름날씨 때문에 학교는 문을 닫고 농부들은 가을 배추를 심을 때까지 쉬었는데 전기가 그랬던 것처럼 에어컨이 사람들이 쓸수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장시켜 준 것이다.

지난해 살인적인 더위를 겪으면서 에어컨은 더이상 사치가 아닌 ‘살기위한 권리’가 되었다.생존을 위해 최근 지인이 준 에어컨을 설치했는데,실외기를 달기위해 베란다에 매달린 기사를 보면서 20만원이 넘는 설치비용이 과한게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이 기사에게 실외기 설치작업이 가장 힘들겠다고 하자 의외의 답변을 내놨다.집 주인이 자신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청소를 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것이었다.실외기를 설치하려면 어쩔 수 없이 더러워진 공간에서 작업해야 하는데 이를 이해하지도,용납하지도 않는 집주인이 많더라는 것이다.에어컨 설치기사의 얘기를 들은 후 아파트 외벽마다 나란히 걸려 있는 실외기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진종인 논설위원 whddls25@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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