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간 모은 기기로 박물관 건립 목표”
버려진 공중전화기부터 수집 시작
근대 통신역사 정리한 책 펴내
“김구 사형중지 전보 아닌 전화”
근거 제시 학계에 반향 일으켜

▲ 춘천경찰서 소양로 지구대 이봉재 경감이 수집한 전화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경감이 수집한 전화기는 3000여점에 이른다. 최유진
▲ 춘천경찰서 소양로 지구대 이봉재 경감이 수집한 전화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경감이 수집한 전화기는 3000여점에 이른다. 최유진


‘발없는 말은 천리를 가지만 전파를 탄 목소리는 수만리라도 갈 수 있는 시대가 됐다.그리운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던 전화기는 지난 100여년간 수차례 변화를 거듭 해왔다.수천㎞를 떨어진 이들과도 얼굴을 보며 통화를 할 수 있게된 지금,전화교환원이 통화를 연결해주던 그시절 무겁고 커다란 전화기들은 쓸모를 잃고 역사속으로 사라져갔다.최신 통신기기 보급으로 이 공중전화기도 언젠가는 사라져 버리겠지.’

이봉재 춘천경찰서 경감이 20여년 전 길거리에 버려진 공중전화기를 보고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이 경감은 무엇에 홀린 듯 그 공중전화기를 구입해 집으로 가져왔고,이는 3000여점의 통신기기를 모아 책까지 발간하게된 시발점이 됐다.

▲ 춘천경찰서 소양로 지구대 이봉재 경감이 수집한 전화기를 살펴보고 있다.
▲ 춘천경찰서 소양로 지구대 이봉재 경감이 수집한 전화기를 살펴보고 있다.

춘천의 한 허름한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가 불도 켜지지 않는 캄캄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33㎡의 공간에 전화기들이 빽빽히 채워져 있다.마치 작은 박물관을 연상케 하는 이곳은 이봉재 경감이 20여년 동안 발품을 팔아 수집한 통신기기 3000여점이 보관돼 있다.이 경감은 1989년 경찰에 입문한 후 춘천 소양로지구대장을 마지막으로 오는 7월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

전화기 하나하나를 자식같이 바라보며 쓸어내리던 이 경감은 가장 아끼는 전화기를 묻자 자개전화기를 가리키며 눈을 반짝였다.이 경감은 “통신기기를 수집하는 데 있어 애착이 가지 않는 것은 없지만 꼭 한 가지만 이야기 하라면 자개전화기를 꼽겠다”며 “전화기 표면에 부착된 자개가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내는데 이것은 국내에서만 생산돼 더욱 그 가치가 빛난다”고 말했다.

그는 통신기기를 수집하며 근대 통신역사를 정리하는 일에 매달렸다.하지만 관련 문헌에서도 초창기 통신기관은 어디인지,최초로 전화기가 개통된 시기가 언제인지 등에 대한 기초적인 사실조차 명확히 서술하고 있는 사료를 찾기 어려웠다.문헌의 원본을 찾아 하나하나 대조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기존 자료들에 오류가 있음을 발견한 그는 통신사료수집가로서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책을 집필하기로 결심했다.이렇게 탄생한 책이 바로 지난 1월 발간된 ‘문헌에 따른 근대통신 역사’다.

이 경감이 발간한 책은 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최근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것이 바로 김구의 사형 중단과 관련 주장이다.그는 기존 자료들을 통해 김구선생의 사형정지가 전화로 인해 이뤄졌다는 근거를 발견했다고 밝힌 바 있다.그는 당초 고종이 인천감리에 ‘전보’를 통해 김구선생의 사형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 백범일지에 쓰인 ‘전화’를 통해 이뤄졌다는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이 경감은 “백범일지에는 김구의 사형 정지가 고종의 전화로 인해 이뤄졌다는 얘기가 있지만 일부 사학자들은 당시 조선에 전화가 도입돼 있지 않았을 것이란 주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1897년 1월 22일을 전후로 한 수 많은 전화도입과 실험기록,그리고 당시에 한성과 인천 간에 전화가 개통되어 고종과 인천감리 간에 통화가 있었다는 ‘백범일지’ 기록은 신역사학적으로 충분히 신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경감이 근대 통신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그는 “현대 정보통신기술은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 몇년만 지나도 정보통신기기나 시스템에 관한 기록을 찾기 어렵다”며 “‘문헌에 따른 근대통신역사’가 우리나라 초창기 통신관련 기록들을 정리하는데 있어 도움이 된다면 더이상 바랄것이 없다”고 밝혔다.

퇴직을 앞둔 이 경감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자 그는 주저없이 “박물관 건립”이라고 답했다.이 경감은 “가장 중요한 계획은 수집한 통신기기와 사료들을 정리해 박물관을 설립하는 것”이라며 “하루 빨리 많은 분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박물관이 설립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앞서 근대통신역사에 관한 책을 출간하기도 한 그는 정보통신역사에 대해 전반적으로 다루는 책도 집필하고 싶다고 밝혔다. 박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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