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문화재 제자리 찾기
<중> 문화재 가치와 오욕의 역사
묘지 장식 용도로 불법반출
국내 경복궁·탑골공원 전전
파손된 채 보물 가치 반감

▲ 거돈사지 원공국사탑(보물 제190호)
▲ 거돈사지 원공국사탑(보물 제190호)

원주가 고향인 국보급 타향살이 문화재 8점 중 6점이 일제강점기 때 반출됐다.이 중 법천사지 지광국사탑(국보 제101호)이 가장 먼저 약탈됐다.서양풍 조각과 4각 석탑양식을 새롭게 선보이며 1962년 국보로 지정된 지광국사탑은 고려 사리탑 중 최고의 수작으로 꼽힌다.1911년 일본인 손에 해체돼 이듬해 일본 오사카 귀족에게 묘지 장식용으로 팔려 나갔다.같은 해 조선 총독부의 요구 등 우여곡절 끝에 국내로 돌아왔지만 한국전쟁 시 폭격에 산산 조각나는 등 수많은 고초을 겪었다.올 연말 정부의 보존처리가 끝나면 약 반세기 만에 제 모습을 찾게 된다.

원주 폐사지 석탑 중 가장 오래된 (전)흥법사지 염거화상탑(국보 제104호)은 지난 1914년 일본인의 불법 반출 시도를 적발해 돌려받았으나 이후 서울 탑골공원과 경복궁을 전전하는 신세로 전락했다.영전사지 보제존자탑(보물 제358호)은 두 개의 탑이 쌍을 이루며 고려 시대상을 상징하는 승탑으로 평가되지만 1915년 일본인에 의해 원주에서 경복궁으로 강제 반출됐다.영천사에서 반출된 역사적 기록에도 불구,영전사지 보제존자탑으로 불리는 등 이름마저 왜곡된 채 타향살이 중이다.

▲ 흥법사지 진공대사탑 및 석관 (보물 제365호)
▲ 흥법사지 진공대사탑 및 석관 (보물 제365호)

고려 태조왕건이 가장 공 들여 세운 것으로 알려진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보물 제365호)은 기단(基壇)등에 새긴 연꽃과 구름,용의 문양이 정교해 당대 석탑 중 으뜸으로 손꼽힌다.석관(石棺)은 고려시대 승려도 매장했음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로 평가된다.그러나 1931년 일본인의 손을 거쳐 경복궁으로 옮겨졌다.

▲ (전)흥법사지 염거화상탑(국보 제104호)
▲ (전)흥법사지 염거화상탑(국보 제104호)

진공대사탑비(보물 제463호)는 머릿돌과 받침돌이 흥법사 절 터에 남아있다.하지만 일부인 비신석(비문이 새겨진 몸 돌)이 수탈 과정에서 파손된 채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면서 보물의 가치를 반감시키고 있다.

거돈사지 원공국사탑(보물 제190호)은 일본인 간 매매를 거쳐 1948년 경복궁으로 옮겨졌다.여기에 국보인 염거화상탑의 축조시기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인 동제 염거화상탑지(보물 제1871호)와 원주 학성동 철조약사여래좌상(보물 제1873호)은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15년 보물로 지정됐으나 현재 국립춘천박물관에 귀속돼 있다.

남미영 onlyjhm@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