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광복 논설위원

 2002년 10월 30일, 여덟 달 전 오늘, 파리 몽마르트 언덕의 모가도르 극장에서는 한국 뮤지컬 '해상왕 장보고'가 올려지고 있었다. 한국 뮤지컬이 개관식 때 미국 대통령 윌슨이 참석했을 만큼 유서 깊은 그 극장에서 올려진다는 것부터가 파격이었을 것이다. 들끓던 해적을 궤멸시키고 황해에 동아시아권의 평화 무역 상로(商路)를 구축한 장보고의 활약상은 서양인들에게 난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관객들은 중국 산둥성으로 배경을 확대해 통일신라시대와 중국과 일본 멀리 아랍인들의 풍습을 접목한 이 뮤지컬의 연출의도를 금새 알아차린 듯 열광했다. 한국인들은 파리에서 한국인의 문화적 다양성 그리고 그 공존 가능성을 보여주려 했던 것이다. '2010 여수세계박람회''유치위원회도 세계박람회 사무국이 있는 파리에 여수를 제대로 알렸다며 기뻐했다. 사실 이 공연은 세계박람회사무국에 '여수 코리아'를 신청한 이래 국내외 어디든 열 때마다 성공했던 수 만가지 유치 이벤트의 피날레 중 하나였다. 세계 속에 한국을 그렇게 심어 놓고도 '여수'는 불발로 끝났다. 중국 상하이에 개최권을 빼앗긴 게 작년 12월이다. 그때 공황에 빠진 여수는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신 2012년 인정박람회를 치르자고 마음들을 추스리지만 "DJ 없는 호남을 누가 뒤를 봐주겠다고…"하는 회의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대사를 앞둔 강원도 사람들에게 여수의 패배는 생각하기도 싫은 망령이다. 3년 동안 온갖 지혜를 다 짜내고, 평창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종이학을 접고, 실사단이 올 때는 눈치우기 예행연습까지 하면서, 하여튼 별의 별 묘안을 다 짜내 준비한 '2010 평창동계올림픽'인데, 이 결정적인 순간 실패담을 들먹이는 것은 사실 사려 깊지 않다. 더구나 엊그제 출발한 1천 여명이나 되는 유치단, 응원단이 이미 프라하에 여장을 풀고 그 유명한 음악축제 '프라하의 봄(Prague Spring)'이 끝나거나 말거나 맘만 조리고 있을 텐데 여수의 전례는 사실 방정맞고, 김 새고, '분위기 다운'일 수 있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온통 다 잘 된다는 사람뿐이고, 안 된다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으니, 정말 이러다 안 될 경우 그 낭패를 어떻게 감당할지 그게 걱정스럽다는 것이다. 올림픽 개최지 예측에서 한 번도 틀려본 적이 없다는 게임스비즈닷컴이 평창을 최하위로 떨구어 놓더니, 그 후 들어오는 외신들도 비슷한 내용의 흉흉한 정보를 흘리고 있다. 그런데도 우린 연일 막판 뒤집기에 운명을 걸고 있는 느낌이다. 막판 뒤집기의 과학적 근거가 있거나, 비장의 해법이 있다면 괜찮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꿈이 이뤄지던 월드컵 때 환상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라면 그게 안 된다는 것이다. 4강 전에서 독일에게 1골을 먹은 뒤였다. 종료시간은 바짝바짝 다가오는데도 우린 모두 이영표가 밀어준 볼을 이을용이 낮게 감아 올리고, 설기현이 다리 사이로 미스 해주자 달려 들어오던 안정환이 반박자 빠른 인사이드 킥으로 밀어 넣어 동점, 연장전에서는 반대로 안정환이 트릭으로 상대수비를 농락하고 설기현이 골을 넣어 완전히 강원도 산(産)들이 판을 만드는 드라마가 반드시 연출될 것이라고 믿고 또 믿었다. 프라하에서도 그렇게 막판 뒤집기가 이뤄질지 누가 알 게 뭐냐고 서로 등을 쓸어주고만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혹시 노무현대통령이 요즘 보여준 각별한 관심을 믿고 있다면 '여수 그때'는 브루나이 한·중 정상회담에서 DJ가 중국의 주룽지 총리에게 "상하이가 양보하라"고 '협박'할만큼 공격외교를 했던 점을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혹시 프레젠테이션 리허설에서 이창동 문광부장관이 "감이 좋다"고 한 말을 믿는다면 '여수 그때'는 경제부총리 해양수산부장관이 "틀림없이 된다"고 심판 전야 소감을 밝힌 사실을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후원기업 삼성이 있지 않느냐고? 그러나 여수에는 서울올림픽 한·일 월드컵 노하우를 갖고 있는 현대가 있었다.
 "평창 강원도"가 울려 퍼지는 그 순간을 위해 마을마다 고을마다 농악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7월 2일 이전엔 축하 꽹과리를 미리 치지 말자는 것이다. 머슴 제 힘만 믿듯 우직한 감자바우 순정파들이 내 자랑만 하다 제풀에 흥이 나 들 뛰는 모습은 보이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우리가 이 만큼이라도 이룬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어야 한다. 언제 우리가 동계올림픽 유치 '세계 3강' 도민이 되어봤나? 그래야 됐을 때는 감격해서 꽹과리를, 설사 안 됐다 하더라도 "꽝꽈당" 위로의 꽹과리를 울리며 곧바로 일어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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