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바람 잘 날이 없는 게 한반도의 지정학적 운명이다.중국과 러시아를 잇는 대륙세력과 미국과 일본을 축으로 하는 해양세력의 가운데 놓인 것이다.이 두 세력 사이에서 진로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매우 불안정한 환경이지만 인위적으로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다.한반도가 분단되고 지난 70년 단절의 역사를 이어온 것도 이런 길항(拮抗)이 만들어 낸 결과일 것이다.

지금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얼마나 민감하고 불안정한 지층위에 서 있는지를 말해준다.일본은 강제징용 피해배상 문제를 비롯한 현안의 불화를 빌미 삼아 전 방위적인 경제 제재 공세를 퍼붓고 있다.일차적으로 대일 의존도가 높은 3대 품목 수출규제 조치를 단행하면서 파장이 확산일로다.가뜩이나 세계경제가 전반적으로 침체되고 우리나라는 성장률 목표를 하향 조정하고 있는 이때다.

최근 미국과 중국이 양보 없는 무역전쟁을 펼치면서 우리나라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얼마 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미중 수뇌가 만나 정면충돌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하게 됐지만,양국 충돌의 불똥은 최대 교역국인 우리나라에 그대로 튈 수밖에 없다.경제적으로는 중국과 뗄 수 없고,안보 측면에서 여전히 한미동맹 축을 흔들 수 있는 입장이 못 된다.

중국 춘추시대 소국 등(藤)나라 처지가 비슷했던 것 같다.대국 초나라와 제나라 사이에 끼어(間於齊楚) 늘 불안했다.등 나라 문공(文公)이 맹자를 만나 초나라와 제나라 중 어디를 섬겨야할지 물었다.맹자는 자신이 말할 바 아니나 굳이 묻는다면 한 가지뿐이라고 했다.그것은 “못을 파고 성벽을 쌓아 백성과 더불어 나라를 지키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백성들이 떠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다.

큰 나라에 둘러싸여 운신이 어려운 우리의 입장과 흡사하다.우리의 해법도 맹자의 말 속에 있다고 본다.중·러,미·일을 벽으로 생각하면 숨이 막히지만, 잘 이용하면 도약대가 될 수 있다.일본이 뽑아든 수출금지 품목 가운데 대일의존도가 90%가 넘는 것들이 많다고 한다.그만큼 우리 부품·소재산업이 취약하다는 것이다.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고 한다.이 참에 산업체질을 바꾸면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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