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오아시스 도시’ 지구온난화로 사라질 수도
중국 서쪽 사막 속 분지 ‘투루판’
지하수로 활용한 관개농업 발전
지리적 여건 딛고 문명·교역 융성
천산산맥 해빙 가속화 물부족 위협

▲ 투루판 사막에서 생산한 포도를 건조하고 있다.
▲ 투루판 사막에서 생산한 포도를 건조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실크로드를 따라 가는 중앙아시아로의 흥미로운 여정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이는 실크로드 속의 변화하는 농업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인천항의 갑문을 벗어나 황해를 건너 중국 산동성의 위해(威海)항에 내렸다.우선 당나라를 포함한 13개 왕조의 수도였던 서안을 향해 서쪽으로 가는 버스와 열차 등을 번갈아 탔다.시속 300㎞의 고속열차로 한참을 달려도 대평야이다.이렇게 달리면서 정조 때의 실학자 박지원이 열하일기 도강록에 중국의 요동 땅에 도착해 광활한 벌판을 보고 한바탕 울고 싶다고 표현한 글에 왠지 공감이 간다.

여기서 다시 서진할수록 기후와 풍토가 바뀌어 서서히 건조지대로 들어가고 있었다.그래서 북쪽 초원의 길은 모피의 길이요,실크로드는 오아시스 길이요,티베트로 가는 길을 차마고도라 부르는 이유를 알만했다.이어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 건조지역인 고비사막을 가로지르는 만리장성의 서쪽 끝자락인 감숙성 자위관과 불교미술의 묘미를 더하는 돈황의 막고굴에 들렸다.이러한 문화가 꽃 필 수 있었던 것은 인근 신장위구르자치구의 타클라마칸 사막 끝자락인 투루판의 지하 관개농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즉,우물을 의미하는 카레즈(Karez)라는 지하수로를 통해 풍부한 물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찾은 카레즈가 2000년 전부터 시작된 토목기술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카레즈는 천산산맥 경사를 이용해 자연적으로 흐르도록 만든 지표와 지하수로 그리고 용의 입이라 불리는 우물과 소저수지 등의 4개로 구성되나,지하수로가 중심시스템임을 알 수 있다.하늘에서 내려다 본 사진을 보면 지하수로에서 물을 퍼올리기 위해 파놓은 우물이 사막 한가운데 일직선으로 여러 갈래로 늘어선 모습은 만리장성의 경관을 능가할 정도의 탄성이 절로 나온다.이 지하수로의 중심지인 투루판은 해수면보다 약 50m 낮으며,낮의 최고 온도는 47도이고 모래언덕은 82도까지 온도가 오르는 등 사람이 살만한 곳은 아니다.오죽했으면 서유기에 불타는 화염산으로 불리웠을까.그럼에도 약 2000년 전부터 5000㎞ 이상의 지하수로를 건설해 천산의 녹은 만년설을 사막한 가운데로 물을 끌어들여 풍요로운 오아시스 도시를 건설했던 것이다.

▲ 타칼라마칸 사막 속의 투루판 지하수로를 통해 퍼 올린 포도밭의 수로.
▲ 타칼라마칸 사막 속의 투루판 지하수로를 통해 퍼 올린 포도밭의 수로.



이러한 풍요로운 물은 실크로드를 오가는 무역상과 선교사 등에게 충분한 물을 제공해 활발한 동서교역의 근원이 되었다.화염산을 바로 눈앞에 둔 포도농가를 노크했다.수확한 포도를 건조장에 올려놓느라고 가족 모두는 일손이 바쁘다.그들은 나를 보더니 잘 익은 포도를 내민다.이렇게 당도 높은 포도는 처음으로 꿀맛이었다.이어 주인장은 천산에서 끌어 온 물이 흐르는 포도밭 속의 수로로 안내한다.물은 시원스레 밭 사이를 흐르고 있었다.그러면서도 과거 2000여개의 카레즈가 작동하고 있었는데,지금은 수백 개의 카레즈가 말라버려 걱정이라 했다.

이를 기억해 나중에 중국과학원의 천산지역연구소장의 자료를 보니,195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지하수로는 빙하로부터 안정적인 물을 공급받고 있었다.그런데 1950년대 이후의 지구온난화로 중국빙하의 약 절반인 신장성의 빙하가 1950년대 이후 매년 20~27%씩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이는 천산산맥의 빙하를 근원으로 하는 이 지역의 농업생산에 치명적인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 감숙성 명사산의 모래언덕.
▲ 감숙성 명사산의 모래언덕.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빙하의 감소를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즉,천산의 빙하가 녹는 속도가 너무 빨라 매년 1m씩 줄어들며 4000m 이상 설산의 얼음 두께가 1년에 4m씩 얇아진다는 사실을 매년 여름 끝에 산에 올라 눈으로 확인한다고 했다.문제는 만약 빙하감소가 이대로 진행된다면 이 지역은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고 하소연이다.지구온난화로 인한 미래 지구의 위기는 여기서도 나타나고 있었다.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져 해안도시의 침수도 침수지만,고원지대의 물부족으로 인한 피해를 더 걱정스럽게 여기고 있던 터였다.

이어 투루판을 벗어나 실크로드를 따라 우루무치를 지나 키르키즈스탄과 카자흐스탄에서 가축떼를 몰고가는 유목민을 만나가며 우즈베키스탄에 닿았다.1937년 연해주에서 강제이주 당해 중앙아시아의 건조지대에서 벼농사를 시작한 고려인들이 실크로드의 새로운 주인의 한사람으로 활동하고 있음에 짠한 느낌이 와닿았다.그러면서 이들에게 지구온난화의 피해가 없기를 간절히 비는 마음 뿐이었다.


전운성 강원대 농업자원경제학과 명예교수

△강원대 농학과 졸업△고려대 농경제학 석사△일본 큐슈대학 농경제학 박사△전 한국농업사학회 회장△전 미국 예일대학 농민연구소 객원교수△농업기술실용화재단 초대 이사장△강원대 아태&아프리카협력아카데미 원장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