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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 이미지 벗어나 시대 반영한 재평가 필요”

['최규하의 선택' 심포지엄] 발제 불행한 시대와 독대했던 ‘위대한 인물’┃임동욱 한국대통령학연구소장
개인·제도·시대 다층적 고려
식민지 한계 봉착 지성인 분석

남궁창성 cometsp@kado.net 2019년 07월 17일 수요일
▲ 탄생 100주년 심포지엄 ‘최규하의 선택’이 16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함종한 최규하 대통령기념사업회 이사장, 김중석 강원도민일보 사장, 이양수 국회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최유진
▲ 탄생 100주년 심포지엄 ‘최규하의 선택’이 16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함종한 최규하 대통령기념사업회 이사장, 김중석 강원도민일보 사장, 이양수 국회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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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욱 한국대통령학연구소장(한국교통대 행정학부 교수)은 16일 ‘최규하의 선택’ 심포지엄에서 최 대통령에 대한 다면적 해석을 통한 역사적 복원을 주문했다.임 소장은 최 대통령을 개인,제도,시대에 대한 다층적 이해를 통해 다면적 인간으로서 최규하 대통령을 평가했다.최규하는 청년시절 경성고등보통학교와 도쿄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지식인이었지만 식민지 국민으로서 어쩔수 없는 한계에 봉착했던 지성인이었다고 분석했다.

일본 소설가 고바야시 마사루가 대구중학교 시절을 소설로 엮은 ‘일본인 중학교’(1957년)에서 영어 교사로 등장하는 최규하는 학생들로부터 최고로 평가됐지만 조선인으로 밝혀지면서 일본 학생들의 집단적인 괴롭힘을 당하고 결국 학교를 떠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임 소장은 일제기 일본인 학생들에 의해 교단을 떠나야 했던 청년 최규하와 1980년 신군부에 의해 대통령직을 사임해야 했던 대통령 최규하를 연장선에서 해석했다.

하지만 최규하는 해방후 신생 정부 수립기를 거쳐 1960~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는 최고의 실력을 갖춘 엘리트 공직자였다.농림부 양정국장을 시작으로 외교부 통상국장,주일대표부 공사,외교부 장관,국무총리 등으로 승승장구하면서 한일국교 정상화, 한미 안보동맹 강화,에너지 안보 등을 통해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반을 구축한 최고의 공직자였다.

임 소장은 “하지만 1979년 10.26 사건으로 대통령 권한대행과 제10대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는 대통령 팀(참모그룹)이 없는 가운데 신군부에 정치적으로 유폐되면서 대외적으로 우유부단하고 강단이 없는 무기력한 대통령으로 인식됐다”면서 “치세에서 돋보였던 최 대통령의 능력은 난세에서는 빛을 발휘할 수 없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한 순간과 한 시기의 행적을 잣대로 다면적 인간상을 온전히 그려낼 수 없는 것처럼 1980년 최규하 대통령의 부분적인 행적만을 갖고 인간,공직자,대통령으로서 최규하를 단순화해서는 안되고 그가 직면해야 했던 불행한 시대와 관련해 재평가하고 역사적으로 복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남궁창성 cometsp@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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