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가 소속 제작진 수사 의뢰…“유체이탈 화법” 비판
“오디션 프로그램의 생명은 공신력, 심각한 접근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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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치 않던 엠넷 아이돌 오디션 ‘프로듀스 엑스(X) 101’(‘프듀X’) 투표 조작 논란 사태가 결국 수사 의뢰로까지 이어졌다.

이번 논란은 지난 27일 ‘프듀X’ 최종회 방송 직후부터 불거지기 시작해 약 1주일 간 식을 기미 없이 일파만파 했지만, 엠넷이 별다른 대응 없이 오랫동안 침묵하면서 일을 키웠다는 비판이 나온다.

◇ ‘합리적 의심’ 침묵으로 덮으려한 엠넷에 여론 분노

‘프듀X’ 데뷔조 투표 결과에 대한 ‘국민 프로듀서’(시청자)들의 의혹 제기는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또 한 건당 100원의 유료 문자투표였기에 의혹을 제기할 자격도 충분했다.

이번 논란은 마지막 생방송 경연에서 시청자들의 유료 문자 투표 결과 다수에 의해 유력 데뷔 주자로 점쳐진 연습생들이 탈락하고, 의외의 인물들이 데뷔조에 포함되면서 제기됐다.

그러던 중 1위부터 20위까지 득표 숫자가 모두 ‘7494.442’라는 특정 숫자의 배수로 설명된다는 구체적인 분석이 나오면서 이러한 의혹은 더욱 큰 논란거리로 번졌다.

젊은 시청자를 중심으로 분노 여론이 일자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까지 나서서 투표 조작설에 신빙성이 충분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에 팬들은 자체적으로 진상규명위원회까지 조직해 법률대리인을 선임하는 등 법적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사태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도 엠넷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다 사태 발생 닷새 만인 지난 25일 처음 사과문을 내놓으며 “득표율 반올림 후 득표수로 환산해 방송했으며 순위 변동은 없었다”라고 설명했지만,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운 해명은 비판 여론에 더 불을 붙였을 뿐이었다. 오히려 “로또에 연이어 2번 당첨되는 것보다 낮은 확률”이라는 조소만 돌아갔다.

결국 진상규명위 법률대리인이 다음 주중 ‘프듀X’ 제작진을 사기·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고발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전했고, 엠넷은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됐다.

종영 1주일이 되도록 식지 않는 비판에 엠넷은 26일 공식입장을 내고 수사 기관에 수사를 공식적으로 의뢰하겠다며 백기 투항했다. 수사 결과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지겠다고도 약속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논란이 발생한 이후에 자체적으로 조사를 진행했으나, 사실관계 파악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입장문 내용을 섣불리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팬들은 여전히 투표수 원본 데이터 공개를 요구한다.

게다가 엠넷이 제작진을 상대로 수사 의뢰를 한 것부터 납득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안준영 PD를 비롯한 ‘프듀X’ 제작진이 결국 엠넷, 그리고 CJ ENM 소속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도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상황이다.

◇ “어설픈 해명보단 수사가 낫지만…오디션 프로 각성해야”

방송가에서는 매우 늦었지만 엠넷이 수사 의뢰를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평이 대부분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이날 통화에서 “득표수를 반올림을 했다는 설명이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데 그에 대한 해명이 없는 것은 문제”라며 “그래도 엠넷이 수사를 의뢰한다고 하니 엠넷이 자체적으로 조사하는 것보다는 더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 평론가는 이어 “더 믿을만한 수치와 해명을 내놓았으면 더욱 바람직했지만 어쨌든 수사를 받겠다고 하니 해명보다는 진일보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엠넷의 입장문은 여전히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지적하며 “책임질 사람이 책임지면 되는 사태를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한다는 것은, 마치 ‘우리 잘못이 아니라 누군가 잘못을 저질렀으니 책임자를 밝혀내겠다’라는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차라리 제작진과 시청자가 다 참여하는 위원회를 꾸리든지, 콘텐츠 관련 상부기관에서 조사하는 게 바람직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번 ‘프듀X’ 투표 조작 논란 사태는 국내 오디션 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신뢰도를 저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프듀X’의 경우만 해도 투표를 통해 결정된 데뷔조 ‘엑스원’(X1)을 응원하는 팬들과, 아쉽게 떨어졌거나 또는 억울하게 탈락했을지도 모르는 연습생들을 모아 ‘바이나인’(BY9), ‘포에버원’(4EVER1) 같은 파생그룹을 조직하자고 나선 팬들 간 갈등이 벌써 노출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데뷔한 연습생들이 과연 안정적인 환경에서, 그것도 무려 5년간의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지 역시 우려된다.

정 평론가는 “최근 최고 이슈가 ‘소비자 권력’이다. 소비자를 기만하면 불매운동이 벌어진다. ‘프듀X’ 역시 방송사 공신력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심각하게 접근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오디션 프로그램의 생명은 결국 신뢰”라며 “공정하게 뽑느냐 아니냐가 가장 중요하고, 그를 위한 시스템 구축이 필수”라고 덧붙였다.

lis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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