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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수 칼럼] 칼로 죽이는 것, 정치로 죽이는 것

김상수 논설실장

김상수 ssookim@kado.net 2019년 07월 30일 화요일
▲ 김상수 논설실장
▲ 김상수 논설실장
지난 4일 서울시 잠원동에서 일어난 건물 붕괴사고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하루가 멀다 하고 참사가 잇따르는 세상이라지만 기막힌 사연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예측하기 어려운 사태가 빈발하는 위험사회라는 것을 절감한다.수많은 변수와 위험이 산재해 있는 것이 삶의 생태계일 것이고 이런데서 비극성이 연유한다.이런 위험은 모든 생명체의 숙명적인 환경이기도 하다.그러나 숙명론에 기대면 스스로 그 비극성을 키우는 꼴이 되고 만다.

대낮에 멀쩡히 운행 중이던 자동차가 무너진 건물에 깔린다는 것은 예측가능한 일이 아니다.이날 오후 2시20분쯤 신사역 인근 지하 1층 지상 5층의 철거 중이던 건물 잔해와 가림막이 차량 3대를 덮쳤다.여성 2명은 행인의 도움으로 곧 구조됐으나 남녀 2명은 4시간 넘게 매몰돼 있었다.운전자 황모(31)씨는 중상을 입어 병원으로 옮겨졌고,동승했던 여성 이모(29)씨는 결국 숨을 거뒀다.두 사람은 혼인을 약속한 사이로 결혼반지를 찾으러 가던 길에 변을 당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 건물은 절반가량 철거된 상태에서 행인과 차량이 오가는 도로 쪽으로 넘어졌다.붕괴 전에 여러 조짐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불가피한 것이었나 하는 의문이 든다.해당 건물은 철거 전 안전 심의가 부결돼 재심을 받았다고 한다.애당초 안전조치에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다.사고 전날에도 건물 중간부분이 불룩 튀어나오는 이상 징후가 있었다고도 한다.그러나 누구도 이 비극의 질주에 제동을 걸지 못했다.

경찰은 철거 및 감리업체를 압수수색하고 원인과 책임 규명에 나섰지만 참사를 되돌릴 순 없다.그 어떤 처방도 이 개별적 참사에 위안이 되기는 어렵다.이 사고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 전에도 있었고,이후로도 이어질 개연성이 또한 상존한다.바로 이틀 뒤인 지난 6일 경기도 부천에서 철거 중인 연립주택의 건물 외벽과 가림막이 도로를 덮치는 유사한 사고가 났다.또 다시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

이 사고는 개별적·우발적이라기보다는 사업자의 안전무의식,당국의 허술한 관리감독,사회적 감시망의 미흡이 맞물린 구조적 배경위에서 일어났다.그러나 사태 유발에 대한 죄의식이나 사회적 공분 또한 미약하기 짝이 없고 쉽게 잊힌다는 게 문제다.크고 작은 강력사건에는 분노와 규탄의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이런 사고에 대해서는 집단무의식 뒤에 쉽게 숨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세월호 참사 이후 사회안전망과 국가의 역할에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사람을 칼로 찔러 죽인 것과 건물더미에 깔려죽게 한 것이 어떻게 다른가.이런 질문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맹자는 조언을 구하는 양혜왕에게 “사람을 죽이는데 몽둥이로 죽이는 것과 칼로 죽이는 것이 다른가.” “칼로 죽이는 것과 정치로 죽이는 것이 다른가.”라고 물었다.왕은 “다를 바 없다”고 했다.맹자는 “왕의 주방에 살찐 고기가 있고 마구간에 살찐 말이있는데 백성은 굶주린 기색이 있고,들에는 굶어죽은 시체가 있다”며 “이것은 짐승을 몰아서 사람을 잡아먹게 한 것과 같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안타깝지만 이 질문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국가와 행정,정치와 권력이 그 역할을 방기함으로써 국고를 축내고,국민을 고단하게 하고,생명을 잃게까지 하는 일들이 적다고 할 것인가.흉기를 휘두르는 폭력배는 그 진상이 만천하에 드러나 공분을 산다.그러나 제도와 정치와 권력은 그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지만 작폐의 전모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젊은 예비부부의 비극이 그들만의 불운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직면한 사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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