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혁 춘천지법 판사

▲ 조민혁 춘천지법 판사
▲ 조민혁 춘천지법 판사
법관이 법정에서 입는 법복은 왜 검은색일까.법복이 검은색인 것은 다른 어떤 색과도 섞이지 않는 검은색처럼 어떠한 외부적 영향에도 동요하지 않는 법관의 독립을 상징한다고 한다.또한 첨부한 그림처럼 법복의 검자주색 앞단 양옆에는 각각 3개의 수직 주름이 잡혀있는데,이는 법관의 강직함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법관 등의 법복에 관한 규칙’에서는 제식 및 모양 등 법복의 구체적인 사항에 관하여 자세히 규정하고 있다.한 가지 주목할 점은 법복을 법관에게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빌려주는’ 것임을 명시하고 있다는 것이다.위 규칙 제3조 제1항은 ‘법관 등에게는 법복 1착을 대여한다’고 규정하면서 같은 조 제2항에서 법관에 대한 ‘법복의 대여기간은 재판업무를 수행하는 기간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나아가 대여하는 것이기에 위 규칙은 제5조에서 ‘법관이 전직,휴직,퇴직 또는 사망했을 때에는 법복을 반납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법복은 빌려주는 것이니 언젠가 돌려달라는 것은 결국 국민으로부터 주어진 법관의 권한 역시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돌려주어야 하는 임시적인 것임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법관으로 임용되어 처음 법복을 입고 법정에 들어가던 날을 잊을 수 없다.그때 했던 스스로의 다짐을 잘 지켜나가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법정에 들어가기 전 법복을 입는 매 순간 거울을 보며 넥타이가 비뚤어지지는 않았는지,법복이 흐트러지지는 않았는지 옷매무시를 가다듬으면서 나도 모르게 엄숙해지는 시간이 있다.법복은 법관 자신도 평소보다 더 자세와 마음가짐을 바로잡게 만드는 힘이 있다.

법복을 입은 법관이 법정에 들어올 때 앉아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는 것은,법관 개인에 대한 존경심이나 경외심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법관이 재판업무 수행기간 중에만 빌려 입은 법복이 표상하고 있는 사법권을 존중하고 따르겠다는 의사의 표현임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본다.

김용담 전 대법관님이 저서 ‘김용담 대법관의 판결 마지막 이야기’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의 고사를 통해 언급하신 재판의 본질에 관한 구절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재판이 좀 더 신뢰받을 수 있기 위하여는 재판관들은 그들의 뒤에서 어슬렁거리며 따라오고 있는 호랑이인 헌법과 법률과 밀착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지를 늘 살피고,그들의 면전에서 표시되는 존경은 재판관 개인의 학식과 인격과 덕망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 아니라 재판관의 배후에서 헌법과 법률이,그리고 그에 터 잡은 재판제도가 힘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호랑이가 멀리 떨어지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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