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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과 생존에 대하여

천남수 chonns@kado.net 2019년 07월 31일 수요일

지독한 IMF를 겪고 이어 국제 금융위기가 닥쳤을 당시 ‘생존이 개혁’이란 말이 유행했다.우선은 살아남는 것이 중요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는 의미가 담겨있다.“자존심이 밥 먹여주나?”라는 말도 마찬가지다.살기 위해서는 비록 대접을 받지 못하더라도 이를 감수해야 한다는 말이다.더 나아가 어떤 불편이나 수모마저도 감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그러나 이 말에는 최소한의 자존감도 ‘밥’보다는 우선할 수 없다는 물질만능 의식이 숨어있다.

‘삼전도의 굴욕!’우리 역사에 있어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와 함께 굴욕의 역사로 기억되는 사건이다.변화하는 국제정세에 조응하지 못하고 내부 분란만 거듭하다가 결국 막강한 외세의 공격에 속수무책 당하고 말았다.조선왕 인조는 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적인 ‘항복 퍼포먼스’를 감내해야만 했다.백성의 고통은 또한 어떠했겠는가.그러나 이를 반면교사로 삼지 않은 조선은 또다시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는 오욕의 역사를 기록하고 말았다.

최근의 한일관계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있지만,분명한 것은 일본 정부는 우리의 경제적 약점을 파고들어 한일간의 현안을 힘으로 제압하려고 한다는 것이다.이는 우리 정부로 하여금 경제를 위해 자존감을 꺾고 생존을 위한 선택을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다.우리 국민들이 정치적 문제를 경제적 수단으로 해결하려는 일본의 치졸함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그럼에도 내부에서조차 경제적 피해가 우려된다는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국민의 불쾌지수를 높이고 있다.

진정 ‘자존보다 생존인가?’살아 있어야 자존도 있을 것이란 말도 맞다.하지만 자존이 곧 생존이다.자칫 생존에 매몰돼 굴종이 용인되어서는 안된다.실존이 부정되고,자존의 가치가 꺾여지는 것은 인간의 천부적 권리인 자주성 상실을 의미한다.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결권의 포기이기도 하다.먹고 사는 문제가 전부라면 인간이 동물과 무엇이 다르겠는가.자존을 지키는 것이 생존이요,삶의 중요한 가치인 휴머니즘의 구현이다.예나 지금이나 생존의 기저에는 자존이 있었다.이것이 서로 조응하면서 휴머니즘을 구현해 온 것이 인류의 역사다.

천남수 사회조사연구소장 chonns@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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