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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강하의 대중문화평론] 대중지성이 만들어가는 유쾌발랄한 드라마

작은 목소리·마음 쌓여 태풍이 된 ‘NO JAPAN ’
일본제품 정보 제공 ‘노노재팬’
불매운동 확산 사이트 접속 폭주
강제징용 피해자 위로담아 개설
진화한 대중지성 문화 주도·향유
‘관’ 아닌 ‘민’이 만든 현상 의미

데스크 2019년 08월 03일 토요일
▲ 그래픽/ 한규빛
▲ 그래픽/ 한규빛



해석은 여전히 분분하다.어떤 전문가는 이 사건을 두고 참의원 선거를 앞둔 아베의 정치노림수 때문이었다고 말했고,또 다른 전문가는 지난 G-20 정상회담에서 ‘일본패싱’을 당해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일본의 수출규제조치가 발표된 이후 연일 정치,경제,군사 전문가가 나와서 전문용어로 이 현상을 분석하고,사람들은 관련 뉴스를 소비한다.

▲ ‘노노재팬’  사이트 .  연합뉴스
▲ ‘노노재팬’ 사이트 . 연합뉴스


원인이 모호한 이유로 시작된 경제보복은 일본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흐름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우리 정부의 대응과 별개로,시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최근에 만들어져 수시로 접속이 마비되는 ‘노노재팬’ 사이트는 자세한 설명 없이 목록을 모아놓았을 뿐이지만,가끔 접속자 폭주로 마비되곤 한다.처음에 한 개인이 시작한 일본제품을 대체할 수 있는 리스트 작업은 네티즌들의 참여로 풍성해지고 있다.(사실 나도 이 사이트를 방문했다가 놀랐다.당연히 우리 기업 제품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일본제품이라는 걸,부끄럽지만 비로소 알게 되었다.)

시민들은 프로필 사진을 바꾸고,위약금을 물며 일본 여행을 취소하고,여고생들은 일본제 볼펜을 사지 않으면 된다며 발랄하게 웃었다.낮에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하지만 저녁에는 아사히 맥주를 마실 거라고 조롱하던 일본 정치인의 말은 불매운동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마트 진열대에서 일본 제품이 사라지고,우리나라와 일본을 오가던 항공기 일부는 결항되거나 운행이 취소되었다.대중이 만들어내는 변화무쌍한 흐름은 어떤 드라마보다도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중이다.

이런 상황이 되다 보니 정치인들은 번갈아 나와서 이 현상에 대해 우려하기도 하고 시민들의 활동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기도 한다.그들의 말 한 마디,SNS에 올린 짧은 글은 쉽게 기사화된다.스피커가 있는 몇몇 정치인들은 불매운동을 실천하는 시민들을 나무라고 훈계하기도 한다.애국이니,시민의식이니 하는 용어들을 들먹이며.스피커가 따로 없는 시민들은 SNS에 글을 올리고,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댓글을 달고,기사와 자료를 공유하며 유쾌한 방식으로 훈계에 응수한다.

정치를 알지도 못하면서,국제 역학관계를 알지도 못하면서,섣불리 행동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가끔은 그들 스스로 시민이라는 것을 잊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그들 스스로 엘리트이자 지도자(또는 지도층)를 자처할지 모르지만,지식의 공유가 어느 때보다 활발해진 이 시기,뉴스와 가짜뉴스를 구별할 수 있는 대중들의 지성은 그 훈계에 고분고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점잖게 대중들을 가르치려 드는 언론을 향해서도 유머와 촌철살인의 유쾌한 언어로 대응한다.지식은 독점되지 않고,감정은 공유되며,대중지성은 진화한다.

이 일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짐작하기 어렵다.하지만 대중들의 작은 목소리와 마음들이 차분히 쌓여 만들어진 이 분위기는 쉬이 잠잠해질 것 같지 않다.‘노노재팬’ 사이트를 개설한 시민 김병규 씨는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그의 마음을 움직인 건,할아버지가 된 이춘식 할아버지의 말 때문이었다고.열 일곱에 강제징용 되었다가 최근에서야 겨우 배상 판결을 받았는데, 최근의 무역 전쟁이 자신 때문인 것 같아 또 다시 미안해하시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라고.사이트 운영자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주도한다는 목적이 아니라,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대한 위로와 공감의 의미에서 만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랜 시간 동안 위안부 피해자에 관한 영화가 수없이 만들어지고,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영화와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고,책과 기사가 쓰였지만 지금과 같은 일본 불매운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몇 해 전 1200만의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암살’,관람 후에 관객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는 그 영화도 하나의 문화 현상에 머무를 뿐이었다.

이유가 모호한 경제보복,그것이 꼭 자신 때문인 것 같아 또 다시 미안해 하는 강제징용 피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의 가슴 아픈 몇 마디의 말은 누군가의 마음에 고요한 파문을 일으키고,그 파문은 나비효과가 되어 오늘의 태풍이 되었다.

일본 불매운동은 정치적 행위일까?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다.그러나 이 지점에서 정치와 문화는 크게 분리되지 않는다.정치인들이 한 개인으로 문화를 소비하듯,대중들은 ‘호모 폴리티쿠스’로서 문화를 주도하고 향유한다.‘관’이 아니라 ‘민’이 만들어낸 진지하지만 유쾌한 문화적 현상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영화 ‘암살’에서 여성 독립운동가 안윤옥은 이렇게 말한다.“알려줘야지.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까? 백 년이 지난 후,당신의 후손이 당신들의 싸움을 기억하고 있다고.


유강하 강원대 교수

중국고전문학·신화를 전공했다.지금은 강원대학교에서 인문예술치료를 연구하고 있다.지은 책으로 ‘아름다움,그 불멸의 이야기’,‘고전 다시 쓰기와 문화 리텔링’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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