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도 전문가 시대’ 김상우 인제 어론리 이장
전역 후 근무지 인제 정착
궂은 일 도맡아 신뢰 얻어
예산 확보 마을 발전 앞장
“주민-지자체 가교 역할
젊은층 이장직 도전 기대”


강원도가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마을의 이·통장은 단순히 지자체에 공문을 전달받아 전파하는 역할이 아닌 소멸 위기에 놓인 시골마을을 살리기 위해 사업을 구상해 예산을 따오는 ‘행정가’이며 외지인과 원주민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까지 하고 있다.인제 남면 어론리에서 행정 첨병으로 일하는 ‘마을 행정의 달인’ 인제 남면 어론리 김상우 이장을 만나봤다.

경기도 평택 출신인 김상우(65) 이장이 일명 ‘소리향 마을’로 불리는 어론리에 정착하게 된 것은 예비역 중령으로 전역한 2005년.마지막 근무지였던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이 위치한 곳이 바로 어론리다.

군 생활을 하면서 전라도,경상도,서울까지 다 살아봤지만 처음에는 외지인을 외면하는 분위기에 힘이 들기도 했다.이에 굴하지 않고 마을 청년 모임인 상록회에 가입해 마을 일을 열심히 도맡아 하자 마을사람들의 마음이 점차 열렸다.이장직을 맡아보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외지인이 이장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지속적으로 사양하던 김씨가 이장직을 맡겠다고 결심한 것은 4년 전 인제군에서 공모한 희망만들기 사업 공모에서 어론리가 꼴찌나 다름없는 4위를 하면서 부터다.

▲ 김상우 인제 어론리 이장이 지난 31일 마을회관에서 전통농기구 전시관을 살펴보고 있다.  박상동
▲ 김상우 인제 어론리 이장이 지난 31일 마을회관에서 전통농기구 전시관을 살펴보고 있다. 박상동

이장직을 맡은 김씨는 ‘마을 환경 개선’,‘주민의식 개혁’이라는 2가지 목표를 세웠다.서울에서 환경전문가를 불러 마을경관 개선을 진행했고 외부강사를 초청해 각종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고 2018년 강원도 귀농귀촌인 프로젝트 1위에 선정된 양양 선진지 견학을 진행했다.처음에는 “바빠 죽겠는데 왜 부산스럽게 하냐”는 주민들의 핀잔도 있었지만 주민들은 점차 김씨의 의중을 이해했다.마을주민 간 소통을 활발하게 하기 위해 환경정리 등의 소식을 실은 마을신문을 제작하면서 마을 행사에 주민 참여율을 높였다.

어론리가 매번 실패했던 공모사업에도 계속 도전했다.2015년 도전한 인제군 행복마을 만들기 공모사업에서 우수마을로 선정되면서 사업비 1억원을 받아 마을에서 필요했던 토지를 매입했고 2016년에는 어르신 나무공예품 제작을 매개로 행자부 주관 어르신공동체 활성화 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또 같은 해 강원도 기업형 새농촌사업 우수마을로 선정,5억원의 예산을 따오기도 했다.당시 컨설팅 업체가 김씨에게 접근해 상금의 7%를 주면 사업서를 만들어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한 뒤 마을주민들과 군청 담당자들의 자문을 얻어 이룬 쾌거라 김씨는 더욱 기억에 남는다.전문성을 겸비한 이장이 되기 위해 사회복지사 2급,MBTI(직업적성테스트) 일반강사,심리상담사 등 22종의 자격증을 취득했고 강원인재개발원과 한림성심대 등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지난해 11월에는 이통장 처우개선 국회토론회에 참가해 현직 이장으로서 현장의 상황을 전하기도 했다.

이렇게 활발히 활동하는 김상우 이장에게도 바라는 것이 한가지 있다.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이장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김 이장은 “현재 이장 기본수당은 20만원으로 본업 시간을 쪼개 활동하는 이장들이 교통비와 숙식비 등을 사비로 해결하고 있다”며 “최소한의 활동여건을 보장해 준다면 더욱 사명감을 갖고 일할 이장들이 많다”고 말했다.

특히 상급기관으로부터 불특정 수시로 하달되는 공문체계를 개선해줄 것을 원하고 있다.김 이장은 “공문 하달은 조류독감 등으로 인한 가축현황 파악 같은 긴급 업무 외에는 매년 거의 정례화된 내용으로 예측 가능한 업무”라며 “상급부서로부터 일정한 기간을 정해 하달하고 보고받는 체계를 정착시킨다면 예산을 들이지 않고 이·통·반장들의 업무 효율성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 인제지역 마을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정연배(용대2리)·김상우(어론리)·홍상근(신남1리·사진 왼쪽부터) 이장.
▲ 인제지역 마을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정연배(용대2리)·김상우(어론리)·홍상근(신남1리·사진 왼쪽부터) 이장.

후배들에게는 사명감 만으로 이장직을 권유할 수 없어 “나선다”는 핀잔에도 처우개선 목소리를 낸다는 김 이장.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여러개의 직함을 가져봤지만 주민이 직접 선출하는 이장이야 말로 아무나 감히 할 수 없는 영광의 자리”라며 “마을주민들과 소통하고 지자체 담당자들과 가교 역할을 하며 마을 발전을 이루는 이장직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왕근 wgjh6548@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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