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경제보복을 극복 계기로…예산·세제·금융·입지 전방위 지원

일본이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제외를 단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국의 소재·부품·장비산업의 품목이 자국보다 취약하다는 자신감이 깔려있다.

한국의 소재·부품·장비산업은 외적인 면에서는 상당한 성장을 이룩했지만, 기술력이나 해외 점유율 등에서는 여전히 일본에 못 미치는 상황이다.

이에 정부는 5일 일본의 조치에 대응하기 위한 근본적 대책으로 소재·부품·장비산업을 예산, 세제, 금융 등 전방위적으로 지원해 단기적 어려움을 풀고 중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을 강화하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다.

정부는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발표하면서 “궁극적으로 한국 제조업이 새롭게 혁신해 도약하는 기회로 전환하겠다”고 말했다.

▲ ‘일본 화이트리스트 배제’ 발언하는 이해찬 대표     (서울=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오른쪽)가 4일 오후 국회에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명단) 배제 조치에 따른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이낙연 국무총리. 2019.8.4     kjhpres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오른쪽)가 4일 오후 국회에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명단) 배제 조치에 따른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이낙연 국무총리.


◇ 양적성장 못 따라간 질적 성장…한일 격차 심화

2001년 부품·소재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국내 소재·부품·장비산업은 외형적으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다.

소재·부품·장비산업 생산량은 2001년 240조원에서 2017년 786조원으로 3배, 같은 시기 수출은 646억달러에서 지난해 3천409억달러로 증가했다. 무역수지는 2001년 9억달러 적자에서 지난해 1천375억달러 대규모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불어나는 몸집을 지탱할 기반을 탄탄히 다지지는 못했다.

시장은 크지만 기술 난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범용제품 위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소재·부품·장비 자체조달률도 2001년부터 2017년까지 16년간 60% 중반에 머물러 있다.

특히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정밀산업 자체조달률은 50%에 못 미친다.

일본이 시장 크기는 작아도 오랜 기술 축적을 통해 수많은 품목에서 높은 시장점유율을 가져간 것과 대비된다.

한일 공동 생산 품목 931개 중 세계시장 점유율 50% 이상인 일본 품목은 309개에 달한다.

지난해 대일 전체 무역적자 241억달러 중 소재·부품·장비 적자는 224억달러로 92.9%에 달한다.

대일 전체 수입 546억달러 가운데 소재·부품·장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68.0%로 높은 수준이다.

소재·부품·장비산업은 외적 성장에서는 눈에 띄는 성과를 이뤘지만, 만성적인 대일 의존도와 낮은 자체조달률을 극복하지 못했고, 결국 이번에 일본에 경제적 공격의 빌미를 주는 상황을 맞게 됐다.

정부는 “소재·부품·장비 산업은 수요·공급기업 간 협력 부족, 개발과 생산의 단절, 투자 부족, 환경·노동 애로 등으로 인해 빠른 기술 확보와 산업 성장에 한계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 단기∼중장기 아우르는 대책으로 산업 기반 튼튼하게

정부가 발표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은 일본의 수출규제 확대로 수급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는 100대 품목의 조기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면서 소재·부품·장비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정부는 일본의 전략물자 1천194개와 소재·부품·장비 전체 품목 4천708개를 분석해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전기·전자, 기계·금속, 기초화학 등 6대 분야 100개 품목을 선정했다.

이 중 20개는 안보상 수급위험과 주력산업에 미치는 영향 등 전략적 중요성이 커 기술 확보가 시급한 품목이고, 80개는 밸류 체인(가치사슬) 상 취약품목이면서 자립화에 시간이 다소 걸리는 전략적 기술개발이 필요한 품목이다.

20개 품목에는 반도체와 자동차, 기계·금속 각 5개, 전기전자 3개, 디스플레이 2개가 들어갔다.

이들 품목은 전주기적 특단의 대책을 통해 최대한 이른 시일 내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기로 했다.

예컨대 불산액, 불화수소, 리지스트 등 반도체, 자동차 핵심소재는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등 대체 수입국을 신속하게 확보한다.

재고 확보와 수입국 다변화를 위해 보세 구역 등 비축공간을 제공하고 저장 기간은 현행 15일에 필요 기간까지 연장한다.

반입에서 반출까지 24시간 상시 통관지원체제를 가동하고 수입 신고 전 감면심사를 완료하는 등 수입통관 절차·소요 기간을 최소화한다.

관세 납기연장, 분할납부 등을 지원하고 대체물품 수입 시 할당관세를 통해 낮은 세율을 적용해 관세 부담을 줄인다.

불화수소, 레지스트 등의 국내 생산량을 늘리고자 공장을 신·증설할 때는 공정안전심사검사 등 관련 인허가는 신속하게 추진할 방침이다.

또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 소재, 이차전지 핵심소재 등 ‘20개+α’는 추가경정예산 2천732억원을 활용해 조기 기술 확보를 집중적으로 지원한다.

중장기 지원이 필요한 80개 품목은 대규모 R&D 재원을 투자하고 빠른 기술 축적을 위해 과감하고 혁신적인 R&D 방식을 도입한다.

인수합병(M&A), 해외기술 도입, 투자유치 활성화 등 기술획득 방식을 다양화하고 조속한 생산을 위해 화학물질 관리, 노동시간 등 산업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애로는 범부처 차원에서 신속하게 해소하도록 했다.

7년간 약 7조8천억원의 예산을 조기 투입하고 글로벌 소재·부품·장비 기업을 M&A 하는 데는 인수금융 2조5천억원 이상을 지원한다.

수요·공급기업 간 건강한 협력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협동 연구개발형·공급망 연계형·공동 투자형·공동 재고확보형 등 4가지 협력모델에 자금, 세제, 규제 완화 등 패키지 지원을 할 방침이다.

정부는 “소재·부품·장비산업에 예산, 금융, 세제, 입지, 규제특례 등 국가자원과 역량을 총력 투입하는 특단의 대책”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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