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춘 수필가

▲ 이용춘 수필가
▲ 이용춘 수필가

칠월유화(七月流火)!글자 뜻만 보면 한여름 불볕더위로 생각할 수 있다.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다.아주 무더웠던 여름의 날씨가 가을 기운에 자리를 내주는 때를 말한다.중국의 가장 오래된 시집인 시경 중 빈나라 농민이 농촌 풍경을 노래한 빈풍편에 ‘칠월유화(七月流火) 구월수의(九月授衣)…’라는 구절이 있다.칠월유화는 가을의 초입인 음력 칠월이 되면 더위를 상징했던 정남의 별 화성이 서쪽으로 흘러 자리를 비킨다는 뜻이다.즉 더위가 끝나고 가을이 닥친다는 것이다.구월수의는 구월에는 추워지므로 가족들에게 겨울옷을 주어 추위를 막아야 한다는 의미다.

텃밭에 심었던 오이 잎이 노랗게 되어 떨어지고 벌써 노각이 되었다.참외도 한 포기에 서너 개씩 익은 열매를 주더니 줄기가 시들해졌다.여러 차례 물을 주었던 참깨도 이제 작은 알을 떨어뜨리고 빨간 고추도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7월 중순까지는 심어야하나 좀 게으름을 피우다 제대로 자랄 수 있을까하는 염려를 하면서도 빈 밭을 놀리기 아까워 7월 마지막 날 새벽 들깨 모종을 심었다.길게 자란 모종을 서너 대 씩 뉘어 심기를 하다 보니 금방 온 몸이 땀으로 적셔졌다.허리를 펴고 잠시 쉬는데 바람이 불어왔다.그런데 후텁지근한 여름 바람이 아니고 상큼한 가을바람이었다.나뭇잎 하나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가을이 왔음을 안다고 하지 않았던가.한 낮 무더위를 생각하면 가을 운운하기가 좀 이른 감은 있으나,살랑거리는 바람을 이미 맞았으니 철이 바뀌고 있다고 얘기해도 괜찮지 않을까싶다.

가을에 접어든다는 입추가 8일이고,더위가 그치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진다는 처서가 23일이다.굳이 절기를 따지지 않더라도 심심찮게 보이는 가을 잠자리 떼와 군데군데 활짝 핀 코스모스는 우리 곁에 이미 가을이 와 있음을 알려준다.무 자르듯 철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육상계주경기 때 주자간 배턴을 주고받기 위해 20m 구역 내에서 앞뒤 주자가 함께 달리는 것처럼 앞 계절과 뒤 계절이 얼마간 겹치다가 계절이 바뀐다.아침저녁의 선선한 기운이 차츰 늘어날 것이다.이제 며칠 남지 않은 더위를 지혜롭게 보내는 일만 남았다.예나 지금이나 정부에서 군 생활환경 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나 20대 초반의 젊은 남자들이 집단으로 생활하는만큼 적응하기 쉽지 않고 힘든 일도 참 많다.그 역경을 이겨내는 가장 쉬우면서도 좋은 방법이 전역 예정일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었다.전역이라는 기다림과 희망이 온갖 시련을 이겨내는 힘이 되었다.심지어 입대하는 날부터 달력에서 지난 날짜를 X자로 지우는 전우도 있었다.기다림이 없으면 삶이 지루해진다.여행,만남 등 올 가을 할 일을 미리 정하고,그 때를 기다리다 보면 올 무더위도 쉬 끝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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