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형렬 에세이 장자 전집’
유랑의 고독 속 찾은 장자
이미지와 달리 권력 거부
꿈의 언어로 시스템 비판
‘위안의 철학’ 에세이 옮겨
장자 초상화



장자를 아나키스트이자 권력구조를 비판한 혁명가로 재조명한 장자 전집이 나왔다.속초에서 태어나고 자란 고형렬 시인의 장편 에세이다.고 시인은 40년전 고성 현내면 서기를 하면서 ‘장자’를 읽은 덕에 등단했다.이후 출판사에서 일하던 그는 장자를 본격적으로 읽어보자는 젊은 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50세가 되던 해 일을 그만뒀다.이후 15년간 장자와 동거하며 원고지 1만2000장 분량의 글을 써 내려갔고,그 결과를 이번 전집으로 내놓았다.

고 시인이 태어난 사진리는 1954년 양양군이었다가 고성군으로 바뀌고 지금은 속초시가 됐다.한국전쟁 이전에는 38선 너머 이북지역이었다.매우 가난했던 어린시절을 보냈고 아버지 고향이 전남 해남이다보니 객지의식도 있었다.어린시절부터 체감한 ‘경계’의 정체성이 작품에도 큰 영향을 줬다.고 시인은 “삶을 돌아보면 나는 늘 주인이 아니라 손님이었다.나그네처럼 정착하지 못했고 늘 어디론가 가고 싶었다.해 뜨는 수평선과 해 지는 설악산을 보며 그런 동경을 많이 가졌다”고 했다.이같은 유랑의 욕구는 2300년전 장자를 찾아가게 만들었다.가난했던 집을 떠나 방황하다 부친의 갑작스러운 별세 후 속초로 귀향,이른 나이에 가장이 됐고 지방공무원 시험을 쳐서 고성 현내면 서기를 했다.그때 만난 것이 장자다.

이번 전집은 장자의 고전 ‘내편’에 따라 소요유,제물론,양생주,인간세,덕충부,대종사,응제왕 7권이다.1741년 나온 장자 해석본 ‘남화경직해’를 바탕으로 번역하고 해석도 붙였다.책은 시를 쓰듯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지고 “∼것 같다”는 답으로 쓰였다.직유법을 끌어쓰면서 결론적 문장을 피했다.책도 순환구조로 만들어 어디서부터 읽어도 상관없다.독자들이 천천히 읽으며 생각할 틈을 주기 위해 한자에는 없는 쉼표도 많이 넣었다.“인간은 본질적으로 불안하다.언젠가부터 분명한 것이 싫어졌다”는 말에서 작법의도가 보인다.
▲ 장자 초상화.
▲ 장자 초상화.

신비주의적이고 관조적으로 알려진 장자 이미지와 달리 고 시인은 “치열했던 아나키스트이자 시인”으로 장자를 평가했다.“합리적이고 유물론적인 사람”이라고도 했다.그는 “전국시대를 산 장자는 권력중심 사회로 가면 안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정치인 대신 어려운 곳의 불구자 등을 만나 대화했다”면서 “이는 석가나 예수도 마찬가지였다는 점에서 기이하다.동북아에서 그런 사람이 바로 장자”라고 했다.장자가 공자를 비판한 지점이 많다는 해석도 흥미롭다.고 작가는 “공자에 대해 ‘중니’나 ‘공구’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그를 별로 존중하지 않았던 것 같다.인간 본성을 권력구조 속에 재편했기 때문”이라면서 “장자는 가족,교육,군주 등 가부장 시스템 코드를 비판했다”고 했다.하지만 장자는 비판대상을 노골적으로 면박하기 보다 꿈의 언어로 말하고 사라지는 방식을 택했다.고 작가는 “만물과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고통겪는 사람을 찾았던 장자의 문학에 얼마나 큰 인내심이 있었겠느냐”며 “젊은이들에게는 현대적으로 읽히면서 어르신 세대에는 위안을 주는 철학”이라고 했다. 김진형



≫저자 약력

속초 출신 고형렬은 시 ‘장자’를 ‘현대문학’에 발표하며 등단,창비 편집부장과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첫 시집 ‘대청봉 수박밭’을 시작으로 ‘밤 미시령’,‘나는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에세이 ‘등대와 뿔’ 등을 냈다.계간지 ‘시평’을 창간,아시아 시를 소개해 왔으며 동북아 최초의 국제동인 ‘몬순’을 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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