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

▲ 이영춘 시인
▲ 이영춘 시인

나는 톨스토이가 남긴 ‘사랑’에 대한 정의를 아주 좋아한다.좋아하다 보니 강단에 섰을 때나 특강을 할 때도 가끔 인용한다.이 글에서도 그 말을 인용하려 한다.톨스토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그리고 그는 “사랑이다”라고 정의한다.그러면 두 번째 “소중한 사업(일)은 무엇인가?”라고 설의한다.다시 그는 ”사랑하는 일”이라고 한다.그렇다면 그 “사랑의 대상은 누구인가?” 세 번째 물음으로 화두를 던진다.“지금 바로 내 옆에 있는 이웃”이라고 정의한다.

이 명문을 감명깊게 읽은 것은 아주 오래전 박목월의 자선집 ‘밤에 쓴 인생론’에서였다.박목월 시인은 어느 날 영동선 기차를 탔단다.태백으로 가는 길인지 동해로 가는 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아무튼 그분 옆 자리에 앉은 웬 여대생이 알아보고는 자꾸 말을 걸더란다.박목월은 귀찮아서 대충 얼버무려 무성의하게 대답했다는 것이다.서울에 돌아와 한 달쯤 지난 후 모 대학에 근무하는 친구교수를 만났단다.그런데 그 친구의 말,“한달여전 내 제자가 영동 어느 산속에 가서 자살했다”는 것이다.박목월은 그때의 시간,날짜,그리고 여학생의 모습 등을 자세히 물었다.놀랍게도 죽은 여학생은 바로 옆자리에서 귀찮게 말을 걸던 그 학생이더란 것이다.박목월은 가슴을 치며 후회한다.“그때 내가 조금만 더 정성스럽게 대화해 주었더라면 죽지않을 수도 있었을텐데”라며 한탄한다.이렇게 후회하면서 인용한 글이 톨스토이의 명문,‘사랑’에 대한 갈파(喝破)다.

특히 박 시인이 후회한 것은 바로 세 번째,지금 가장 가까이 하고 있는 이웃에 대한 ‘무성의와 무관심’ 때문이었다.그렇다.동양철학에서도 ‘정성’은 곧 사랑이라 했다.시인 말대로 조금만 더 성의있게 그때 그 여학생을 대해줬더라면 그 학생은 죽음의 순간을 벗어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더구나 삶의 연륜과 이상적 정신세계를 지향하는 유명시인이기에 더욱 큰 영향을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명사의 성의와 정성이 담긴 한 마디 말이 오고갔더라면 그 학생에게는 어떤 전환점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한창 감성이 예민할 나이쯤에는 자신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려 주는 사람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혹은 톨스토이의 말을 인용할 때도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과연 나는 내 ‘이웃’에게 ‘정성’을 다하고 있는가.정성을 다하는 것은 꼭 물질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무엇보다 마음이 중요하다.마음은 곧 상대편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것이다.불교에서 나온 말로 ‘보시’란 것이 있다.보시에는 언시(言施)도 있고 심시(心施)도 있고 신시(身施)도 있단다.

이런 말을 쓰다 보니 문득 뚜르게네프의 ‘거지’란 산문시가 생각난다.늙은 거지가 신사(나)에게 동냥을 청한다.신사는 기꺼이 내어 주려고 한다.그러나 지갑도,시계도,손수건도 아무것도 가지고 나온 게 없었다.있는 줄 알고 준다고 했던 것이 여간 미안하지 않았다.신사는 더럽고 벌벌 떠는 거지의 손을 덥석 잡는다.정말로 미안하다고 말한다.그러나 그 거지도 신사의 손을 잡고 “아닙니다.손을 잡아준 것만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참 고마운 선물을 받았습니다”라는 내용의 시다.거지는 자신을 더럽게 여기지 않고 진정한 마음과 정성으로 대해 준 신사에게 값진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이런 진정한 마음가짐이 ‘바로 지금 나와 이웃해 있는 사람’에게 사랑과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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