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 고랭지 배춧값 폭락 농민 시름
풍년에 출하량 크게 늘어
배춧값 평년 3배 이상 하락
트럭 500대분 1차 폐기

▲ 태백시 상사미동 권흥기씨가 앞으로 폐기 처분될 배추밭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김우열
▲ 태백시 상사미동 권흥기씨가 앞으로 폐기 처분될 배추밭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김우열


“자식 같이 애지중지 키운 배추를 갈아엎을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집니다.어렵다 어렵다 해도 배춧값 시세가 이렇게 곤두박질 친적은 없었습니다.”

풍년일수록 농민들은 더 힘들어지는 ‘풍년의 역설’이 고랭지배추 주산지인 강원도를 덮쳤다.배추 풍년에 따른 출하량 증가,수입김치 급증,가격 폭락,폐기 처분으로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8일 오전 태백시 상사미동 권흥기(47)씨의 3만5000평 규모 배추밭.15년째 배추농사를 짓고 있는 권씨와 충북에서 온 단골 납품업자 양모(48)씨는 “공장에서 물량(배추)이 많아 가져오지 말라고 한다.시장 상인들도 팔리지 않아 꺼려한다.가격 단가가 맞지 않는다”는 말을 주고 받으면서 어려움을 토로했다.

권씨의 배추밭은 한창 수확할 시기임에도 다 자란 싱싱한 초록 배추들이 그대로 남아있다.권씨는 “올해 풍년이 들었지만 출하량이 넘쳐 팔 때가 없고,값이 폭락해 출하하면 오히려 손해를 본다”며 “망가진 배추 빼고 반은 출하했고,지금 남아있는 반은 이틀 뒤 모두 갈아엎어야 한다”고 말했다.

배춧값이 좋을 때는 5~8t 트럭 1대당(300평 기준) 500만~600만원이었지만,지금은 50만~100만원 수준.약값,비료값,인건비 등을 제외하면 적자다.강원도가 조사한 올해 고랭지배추 생산량은 21만7675t으로 지난해 보다 3만2221t 줄었다.

하지만 배추농사가 잘돼 상품으로 팔 수 있는 출하량이 크게 늘었다.이에 따라 전국 여름배추 출하량(7월 하순~9월 하순)의 95%를 차지하고 있는 태백과 강릉,평창,정선 등지의 강원도 고랭지배추는 수급안정을 위해 지난 5일부터 오는 20일까지 1차 폐기 처분에 들어간다.폐기 처분 배추는 트럭 500대 물량으로 알려졌다.

태백시 관계자는 “봄배추 물량이 비축돼 있는 상황에서 올해 배추가 일찍 출하돼 기간이 겹치면서 농가들의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다”며 “폐기 처분 등이 이뤄지면 가격이 안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농민들은 “7월초부터 배춧값이 없어 빨리 폐기를 했어야 했는데 너무 늦게 결정됐다”며 “수급조절 실패 악순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근 정선지역도 상황은 마찬가지.고랭지배추와 무가격이 폭락하면서 정선군과 농협은 산지폐기를 위한 현장조사에 나섰다.신동읍 방제2리에서 2만5000평 규모의 배추농사를 하고 있는 이종열 씨는 “이달말 배추 출하를 앞두고 있지만 가격 폭락으로 도매상인들의 움직임이 없다”며 “출하를 포기하거나 산지폐기 수순으로 내몰릴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윤수용·김우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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