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 맺힌 삶의 터전, 경이로운 대지예술이 되다
경사면에 계단처럼 만든 다랑논
전세계 산간지역에 광범위 분포
필리핀 바나웨이 세계유산 지정
아름다운 경관 관광명소로 활용

▲ 페루 마추픽추의 악어 모양의 주거지와 푸마형상의 계단식 밭.
▲ 페루 마추픽추의 악어 모양의 주거지와 푸마형상의 계단식 밭.

몇 해 전 여름,필리핀 루손 섬 북부 산악지대에 자리한 바나웨이로 가는 야간버스에 몸을 실었다.동트기 시작 전의 희미한 어둠 속에 목적지에 내렸다.주위는 해발 약 1500m의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한 여름인데도 한기가 몸을 파고든다.이곳이 바로 대략 2천 년 전에 필리핀 원주민들이 만들어 지금까지 이용하고 있는 세계8대 불가사의로 1995년 유네스코의 세계유산뿐만 아니라,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된 이푸가오 주의 거대한 다랑논 지역이었다.

전망대에 섰다.산 정상까지 조성된 다랑논이 계곡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절경을 사진기에 담는 셔터소리가 끊이지 않는다.이어 트라이시클에 실려 아슬아슬한 좁은 낭떠리지 길을 따라 다랑논의 진수라는 바타드로 향했다.바타드 입구에서 1100m의 고개를 걸어 넘어야 했다.도중에 이푸가오 족의 민속의상에 지팡이를 쥔 노인이 맞아 준다.이 노인은 이곳을 찾는 길손들과 사진을 찍는 대가로 손을 내밀고 있었다.

▲ 인도네시아 발리섬의 다랑논.
▲ 인도네시아 발리섬의 다랑논.



산마루에 올라서니,깊은 계곡 바닥에서부터 치솟아 오르는 듯한 다랑논의 모습은 실로 장관이다.항아리 모양의 사방 경사면을 따라 높은 곳까지 논이 가득하다.항아리 밑바닥에 해당되는 작은 평지에는 이들 다랑논을 관리하는 마을이 평화롭다.돌로 쌓아 올린 논둑길을 우연히 만난 독일인과 함께 걸었다.아랫 논에서 윗 논까지 높이가 5m 이상되는 곳도 있어 조금이라도 한 눈 팔면 그대로 추락할 판이다.지력유지를 위하여 대개의 경우 1모작만 한다는 것도 알았다.

이러한 다랑논의 매력은 세계 여러 곳의 다랑논을 찾게 만들었다.중국 운남성의 성도인 곤명에서 약 370km 떨어져 다랑논의 고향임을 자처하는 원양현의 소수민족 하니족 마을을 향하여 버스에 올랐다.이곳 다랑논은 약 2300년 전부터 해발 144m에서 2939m에 걸쳐,논 약 3천만 평에 무려 약 17만개의 작은 조각 논이 3700계단으로 이루어져 세계최대다.계절따라 경이롭게 변하는 이 아름다움을 담기 위하여 세계 각처에서 수많은 사진작가 모여들고 있다.

▲ 필리핀 루손섬 북부 바나웨이 다랑논.
▲ 필리핀 루손섬 북부 바나웨이 다랑논.


그 오랜 기간 악조건인 험하고 높은 비탈을 개간한 다랑논이 망가지면 고치고,붕괴되면 다시 세우는 등 보전가치로서의 유물이 아닌 지금까지 식량을 조달하는 역할과 기능을 그대로 행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울 뿐이다.참으로 인간과 환경과의 개발과 보존이라는 조화로움이 표현된 아름다운 경관에 마음이 함몰될 뿐이다.이런 하니족의 다랑논은 이웃한 베트남,라오스,태국과 미얀마의 산악지대로 이어지고 있다.특히,히말라야 네팔의 계단식 밭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급하고 높은 산마루를 향하여 올라가는 산악평야의 경관은 잊을 수 없는 경이의 대명사이다.

한편,계단식 경작지는 지중해의 포도와 올리브의 밭 등을 포함하여 아프리카와 남미의 산악지대에 광범위하게 전개되어 왔다.남미 안데스의 잉카인들은 천년 전에 관개시설을 만들어 100만ha에 이르는 계단식 밭에서 감자와 옥수수 등을 재배해 왔다.특히 잉카인은 도시나 경작지를 설계할 때,동식물의 형상을 본떴다.유명한 마추픽추의 주거지역은 악어로 계단식 밭은 푸마 모양으로 만든 것이 그 예다.이는 용기와 힘 그리고 지혜를 얻어 종족의 번창을 기원했던 것이다. 현대도시의 상징인 브라질 브라질리아를 비행기 모양으로 만든 일도 잉카인의 사고에서 왔을 것이다. 

동시에 섬지방의 경사진 곳에서도 계단식 경작은 유행하였다.즉, 영국은 물론 일본은 다랑논 100경을 선정할 정도이며,인도네시아 발리 섬에서 본 다양한 형상의 다랑논의 아름다움은 극치에 달하고 있었다.이들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서서히 사라져가는 계단식 경작지를 활용하여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자원으로 쓰여지고 있음이다.


문제는 이러한 다랑논과 밭은 소수민족이나 힘이 약한 영세소작농에 유지되어 왔다는 점이다.평지의 비옥한 농토는 다수 민족에게 점거되어 소수민족은 산으로 산으로 밀려갈 수밖에 없었다.이는 자연에 대한 도전이라는 것에 앞서 숙명적인 삶의 유지를 위한 투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씁쓸하기만 하다.그래도 기억해야 두어야 할 것은 다랑논의 단위당 생산성은 평야지대의 반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그들이 귀중한 인간의 삶을 유지케 한 농업문명의 한축을 간직한 뛰어난 토지이용의 마술사이자 농업생산의 창조자라는 사실이다.거기에 물과 경작지가 부족해지는 가운데,2050년에 이르면 세계인구가 91억명이 될 거라는 FAO의 추정은 다랑논밭을 둘러싼 여러 상념에 빠져들게 한다.


전운성 강원대 농업자원경제학과 명예교수
△강원대 농학과 졸업△고려대 농경제학 석사△일본 큐슈대학 농경제학 박사△전 한국농업사학회 회장△전 미국 예일대학 농민연구소 객원교수△아태아프리카원장△농업기술실용화재단 초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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