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치는 배추·무 가격에 주저앉은 농민들 ‘산지 폐기’
가격 폭락에도 유통 비용 탓에 소비자들은 체감 못 해

▲ 뭇값 폭락, 강릉 들판에 버려진 무      (강릉=연합뉴스) 이해용 기자 = 최근 뭇값이 폭락하면서 8일 강원 강릉시 외곽 들판에 수확을 포기한 무들이 방치돼 있다. 2019.8.8     dmz@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최근 뭇값이 폭락하면서 8일 강원 강릉시 외곽 들판에 수확을 포기한 무들이 방치돼 있다.


최근 고랭지 무, 배추 가격 폭락으로 강원 고랭지 채소밭에서는 농민들이 출하를 포기하고 산지에서 폐기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산지 폐기는 가격 회복을 위해 시장에 출하되는 농산물을 줄이는 ‘극약 처방’이다. 농민들이 애지중지 키운 채소를 밭에서 갈아엎고 있으나 정작 소비자들은 채솟값 폭락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유통 과정이 다단계로 이뤄지는 데다 무나 배추처럼 무거운 채소는 유통 비용이 다른 채소보다 높아 상대적으로 소비자 가격 변화 폭이 작다.

◇ 소비자 “버릴 거면 날 주지”…생산자 “버리는 게 이득”

“저렇게 갈아엎어 버릴 거면 날 주지 아깝게 왜 폐기해요?”

채솟값 폭락에 산지 폐기가 벌어질 때마다 소비자들이 주로 하는 말이다.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버릴 거라면 차라리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게 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생산자인 농민 입장은 다르다. 나누어주거나 창고에 저장을 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산지 폐기를 하는 이유는 ‘비용’ 때문이다.

무나 배추처럼 상대적으로 무거운 채소는 유통비용이 그만큼 많이 든다. ‘저장했다가 팔면 될 일’이라는 얘기도 저장 비용을 생각하면 선택하기 쉽지 않다.

무의 경우 보통 1평(3.3㎡)당 1박스(20㎏)가 나오는데 어림잡아 무밭 1평을 산지 폐기하는 데 3천원이 든다고 하면 포장비, 운송비, 인건비는 4천원으로 더 많이 든다.

물론 인심 좋은 농민들의 경우 팔지 못한 무를 싼값에 내놓기도 하지만, 굳이 산지까지 찾아 이를 가져가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 저장하려고 해도 저장시설이 없는 농가가 대부분인 데다, 일단 저장시설에 들어가면 폐기 시 산업폐기물로 분류돼 폐기물 가격에 1t당 10만∼12만원이 나온다.

요즘처럼 장마와 폭염이 반복되면 멀쩡한 무도 며칠 지나면 썩어버린다. 썩어가는 무밭을 그대로 방치하면 무름병과 여러 병해충이 발생해 이모작마저 불가능하게 된다.

결국 산지 폐기하는 게 가장 적은 비용으로 처리하는 방법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지자체나 정부 입장에서도 먹거리를 폐기한다는 게 기분 좋은 일이 아니지만, 농업인을 보호하고 비용을 아끼려면 산지 폐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 폭락이라는데 마트 가면 가격 그대로…소비자들 분통

9일 기준 가락시장에서 거래되는 상급 무 1상자(20㎏) 가격은 6천318원이다. 지난해 같은 날 2만3천623원과 견줘 3분의 1에도 못 미치고, 평년가격인 1만4천247원과 비교해도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중품 1상자는 4천202원으로 지난해(1만8천451원)보다 4분의 1로 떨어졌고, 하품은 1천712원에 거래돼 지난해(1만1천687원)와 비교하면 약 1만원이나 차이가 난다.

급기야 하품은 지난달 말 834원에 거래돼 1천원도 넘지 못했다. 배추 역시 상급 1망(10㎏)에 6천∼7천원대에 거래돼 평년보다 25%가량 낮다.

▲ 폭염에 썩어가는 고랭지 무     (평창=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6일 오후 강원 평창군 진부면 한 무밭에서 출하되지 못한 무가 폭염에 썩어가고 있다. 2019.8.6     conany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6일 오후 강원 평창군 진부면 한 무밭에서 출하되지 못한 무가 폭염에 썩어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소비자들은 가격 폭락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유통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고랭지 채소 유통은 농업인→산지유통인 또는 농협→도매시장 또는 가공업체 납품 순으로 이뤄진다. 도매시장으로 가는 경우 지금처럼 낙찰가가 6천원이라면, 막상 소비자가 마트에 가보면 가격이 1만5천원이다.

직거래를 거쳐 소비자에게 공급하지 않는 이상 도매시장에서 경매사→중도매인→판매인 과정을 거치다 보면 경매가가 아무리 낮아도 소비자 가격 변동을 체감하기 어렵다.

결국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수료와 운송비 등 고정비용과 유통이윤 탓에 채소 가격이 비쌀 때는 한 없이 비싸게 느껴지고, 쌀 때는 그 차이가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 폭락 원인은? “과잉 생산, 저장량 과다, 소비 부진”

고랭지 채솟값이 바닥을 치는 이유로는 크게 과잉 생산, 저장량 과다, 소비 부진이 지목된다.

▲ 뭇값 폭락, 버려지는 고랭지 무     (평창=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6일 오후 강원 평창군 진부면 한 무밭에서 출하되지 못한 무가 한쪽에 버려지고 있다. 2019.8.6     conany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6일 오후 강원 평창군 진부면 한 무밭에서 출하되지 못한 무가 한쪽에 버려지고 있다.

배추와 무의 경우 올해 작황이 좋아 생산량이 지난해보다 늘었다. 강원도에 따르면 고랭지 무는 지난해 6만7천t이 생산됐으나 올해는 10만5천t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기록적인 폭염으로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서 금값을 기록했지만, 올해는 ‘풍년의 역설’이 일어났다. 게다가 고랭지가 아닌 남쪽에서 생산된 노지 무와 배추가 저장시설로 들어갔다가 고랭지 채소 출하 시기에 시장에 나오면서 가격 하락을 부채질했다.

여기에 소비 부진까지 겹치면서 고랭지 채소는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와 강원도는 무 8천400t을 산지 폐기한다. 우선 채소가격안정제에 참여하는 계약재배 농가에서 출하 예정인 무 2천900t을 14일까지 폐기한다.
▲ “내다 파느니 버리고 말지…”     (평창=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6일 오후 강원 평창군 진부면 한 무밭에서 농민이 예취기로 무 윗동을 잘라내며 산지 폐기 작업을 하고 있다. 2019.8.6     conany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6일 오후 강원 평창군 진부면 한 무밭에서 농민이 예취기로 무 윗동을 잘라내며 산지 폐기 작업을 하고 있다.

또 강원도 자율감축으로 5천500t을 폐기하고, 진부농협에서도 예산을 들여 550t을 폐기한다.

일단 ‘과잉 물량’을 선제적으로 처리한다는 방침이지만, 도 조사 결과 강릉·삼척·홍천·평창 등 산지 농민들이 원하는 산지 폐기량은 3만여t으로 면적으로 따지면 300㏊에 이른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기상이변으로 작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고, 올해는 추석도 빨라 상황을 지켜보며 수급 물량을 조절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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