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평창남북평화영화제 폐막
강원도 첫 경쟁방식 국제영화제
강제규 감독 ‘쉬리’ 비화 소개
북한·난민·인권 소재작 초청


선을 넘을 용기를 얻었는가.힘을 모을 뜻을 세웠는가.제1회 평창남북평화영화제가 지난 20일 폐막했다.‘선을 넘어 하나로,힘을 모아 평화로’를 슬로건으로 한 이번 영화제는 경쟁부문을 포함해 열린 강원도의 첫 국제영화제였다.2018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린 평창과 강릉에서 개최,평화올림픽과 문화올림픽의 유산을 함께 잇는다는 의미가 컸다.남북관계가 영화계에 미친 영향,영화예술의 역할에 대해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 영화계가 말하는 ‘평화’

영화제 기간 강릉을 찾은 ‘쉬리’의 강제규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미래를 위해 분단이라는 현실에 대한 인식과 사회적 지향점이 필요하다.영화를 통해 이런 역할을 하고자 한다”고 했다.그는 “쉬리 시나리오를 쓸 때 북한 유학생을 만나 북한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뀐 경험이 있다.이데올로기를 대비하는 방식으로 보여주면 안된다고 생각해 쉽게 스토리텔링하고자 했다”고 제작비화도 밝혔다.

1980년 개봉 당시 임의편집되는 수모를 겪은 ‘최후의 증인’도 ‘이두용 감독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새로 조명됐다.반공영화가 주를 이루던 시절 남북관계를 냉정한 시선으로 담아낸 영화로 2017년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되는 등 뒤늦게 걸작으로 평가받은 작품이다.이 감독은 “‘빨갱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소문으로 사상검증을 받았다”고 회상했다.영화 일부가 평창 횡계 일대에서 촬영된 사실도 소개됐다.남북 고위관계자를 인터뷰한 ‘한반도,백년의 전쟁’의 피에르 올리비에 프랑수아 감독,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지난 해 북한에서 촬영한 ‘영광의 평양사절단’의 페피 로마뇰리 감독 등도 제3의 시선에서 본 북한의 모습을 공유했다.

개막식에는 개막작인 북한영화 ‘새’의 모티브가 된 주인공 가족이 무대에 올랐다.6·25 전쟁으로 이산가족이 된 부자가 서로 날려보낸 새를 통해 생사를 확인했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의 주인공 원병오 박사 장남 원창덕 박사가 참석,“고작 18㎝의 작은 쇠찌르레기가 부자를 이어줬다.그런 기적이 남아있는 이산가족들에게도 찾아오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안스가 포크트(독일) 심사위원은 “독일과 같은 분단역사의 한국,그 중에서도 분단도인 강원도에서 평화와 공존의 영화들이 상영되는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했다.

■ 영화계 관심부터 북한참여까지…

영화제는 당초 북한 인사들의 참여와 공동행사를 염두에 뒀었다.올해 초 도 고위 인사들의 방북 등 교류 과정에서도 영화제 개막은 평창에서,폐막은 금강산에서 진행한다는 구상이 그려졌다.하지만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 이후 정세가 확연히 달라졌고,영화제 계획도 수정됐다.북한은 개막식 당일에도 북강원도 통천에서 미사일을 발사,찬물을 끼얹었다.

북한 참여가 어려워지자 영화제는 해결책으로 ‘평화를 맞이하는 태도’에 대해 고민하는 작품들을 배치했다.북한 이탈주민을 비롯해 난민,인권 등의 소재를 통해 ‘다름’을 인정하면서 진정한 공존의 준비가 되어있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들이 초청됐다.한국경쟁 부문 수상작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시차를 두고 남한에 온 탈북 모녀 이야기를 담은 ‘은서’가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실제 관객들의 관심도 북한영화들이 상영된 ‘평양시네마’와 스페셜 토크 ‘북한에서 영화찍기’에 집중됐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제한상영 판정을 받은 북한영화 ‘봄날의 눈석이’ 등이 상영됐고,상영작 중 가장 주목받은 작품은 20년만에 리마스터링된 ‘쉬리’였다.개봉 20주년을 맞아 필름으로 남아있던 영화를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상영,대중성도 일부 달성했다.

일반 상영작 관람률을 높이는 방안과 다양한 영화계 인사들의 참여는 과제로 남았다는 평이다.영화제 기간에는 불발된 북강원도 원산 개최가 계속 언급됐지만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평화를 내세운 영화제 특성상 밖으로는 대북정세 등 외교 이슈를 살피고,안으로는 영화 애호가와 지역주민들의 관심을 끌어올리는 방안을 찾으며 내년을 준비할 계획이다.

김준종 영화제 사무국장은 “무사히 한 발을 떼었는데 당초 목표했던 남북영화교류 등 앞으로 가야할 길이 더 많다”며 “더 많은 영화인들의 참여를 이끌고 강원도를 대표하는 국제문화행사 격에 맞는 행사가 될 수 있도록 영화제를 다녀간 분들의 다양한 의견을 모아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여진·한승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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