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재 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
▲ 최영재 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
한일관계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지만 이런 상황이 아니었으면 지나쳐 버렸을 대한민국 국민 개개인의 각성(覺醒)은 천만다행이라 생각한다.이참에 우리는 정신을 차려 ‘일본’의 실체를 다시 들여다 보기 시작했고,그리고 우리 안의 분열의 문제도 깨닫게 됐다.무엇보다 한일관계의 역사적 흐름과 동북아 안보구도의 출렁거림,그리고 세계 무역전쟁 등 시공간적으로 훨씬 넓은 인식의 지평 속에서 진지하게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 점검하는 계기가 됐다.

‘일본이 지금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알면 한국 정치가 저렇게 소모적인 정쟁이나 일삼고 있지 않을텐데…’ 연구년으로 지난 1년간 동경에 체류하면서 종종 되뇌던 상념이었다.한마디로 일본은 ‘전쟁국가’였다.전국시대와 막부시대,내전을 치르면서 전투력 향상을 위해 서양 과학기술 문물을 받아들이고 부국강병을 도모한 끝에 그 여세로 침략전쟁을 일으켰다.1592년 임진왜란,1910년 일제식민지배는 미몽 속에서 내부분열과 준비 소홀로 인해 일본에게 처참하게 당한 사건 아닌가.

지난해 후반쯤 극우집단의 혐한 기사와 댓글로 넘쳐나기 시작한 ‘야후 저팬’ 공간은 사이버 전장터를 방불했다.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조악하고 거친 공격적인 글들은 마치 ‘반일’ 적장을 쓰러뜨리기 위해 돌진하는 일본병사들을 연상케 했다.그러더니 평화헌법 개정을 통한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를 꿈꾸는 아베정권이 7월 참의원 선거와 때맞춰 ‘수출관리’란 미명의 보복을 도발했다.

한국 정부가 적반하장의 일본에 ‘다시는 지지 않겠다’며 정면 대응을 선언하고,국민들도 일본제품 불매와 노아베 운동에 나서는 동안 일본 사회는 비교적 조용했다.한국 언론에서 크게 보도한 자발적 노아베 시위는 불과 200여명 모이는 수준이다.신군국주의를 추진하는 아베에 비판적인 학자와 언론인,시민단체도 건재하지만 지배적인 보수 목소리에 눌려 조심스러운 눈치다.젊은층의 한류 선호는 크게 변함이 없다고 하고,장년층 이상에서 말없이 한국제품을 안산다고 한다.모임이나 거리에서 만난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속마음(혼네)을 쉽게 드러내지 않은 채 여전히 예의바르고 친절하다.자민당 중심의 장기 일당 지배체제의 일본 정치는 특히 아베정권 들어 민주주의 후퇴 현상(국경없는기자회 언론자유도 한국 41위,일본 67위)을 보이고 있지만,반면에 정파적 분열과 충돌이 적다.아베총리와 내각대신,참의원이 연금정책이나 예산안을 놓고 구체적이고 심도있게 논의하는 공영방송 NHK 중계를 보고 있노라면 영국 의회의 정책 토론이 연상된다.한일합방때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일본은 여전히 외교강국이다.과학부문 노벨상 수상자 21명이 말해주듯이 과학기술산업 강국이며,한류 같은 대중공연을 제외한 예술,문화,건축,디자인,스포츠강국이다.

아베정권의 경제보복 도발에 정부의 강경대응에 동의하고,국민들의 분노와 반아베운동에 공감한다.그것은 일본에 앞선 우리 민주주의와 정의의식에 기반한 것이기도 하다.다만 이참에 일본식 표현으로,외교력,기술-과학-산업력,문화력에서도 우위로 가도록 정치와 언론,국민이 분열을 신중하게 관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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