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광 식 논설위원

 친애하는 지원 군, 나는 그대처럼 어둠 속에서 밀담을 나누진 않았네. 나는 그저 울었을 따름이지. 그대처럼 중국에 갔을 때 말이야. 요동벌판을 보았을 때, 나는 그 엄청난 스케일에 압도당하여 소리쳤지. "아, 참 좋은 울음터로다. 가히 한번 울 만하구나" 하고. 훗날 학자들은 내 이 감탄을 '호곡장론(好哭場論)'이라 이른다지?
 "사람들이 칠정(七情) 모두가 울 수 있음을 모르는 모양이오. 기쁨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노여움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도강록(渡江錄)'의 이런 술회를 보고 뒷사람들은 내가 혹 울보가 아닌가 여길지 모르나, 광대무변한 요동 천하를 직접 보면 "이제 산해관(山海關)까지 1천2백 리 사방에 도무지 한 점의 산도 없이 하늘 끝과 땅 변두리가 맞닿은 요동벌판에 왔으니 이 역시 한바탕 울 만한 곳이 아니겠는가"라고 한 내 말을 이해하리라 믿네.
 지원 군, 검찰에 가면서 저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낙화(洛花)' 몇 구절로 권력의 무상함을 토로했다지? "꽃이 지기로소니 / 바람을 탓하랴 / 주렴 밖에 성긴 별이 / 하나 둘 스러지고…" 그러다가 그대는 입술 파닥여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했다며? 나의 울음과 그대 것은 현상은 같아도 본질은 다르네 그려. "울음이란 천지간에 우레와도 같은 것이다"가 내 울음의 요체인데, 그대의 울음은 어찌 한낱 억울함을 풀어 버리는 따위의 소아·감상적 울음이던가!
 지원 군, 그대는 또 사람들에게 적지 아니 웃음을 안겨 주었어. 유머 혹은 익살, 골계 또는 개그. "단 한 푼도 북(北)에 가져다 주지 않았다"고? 그럼에도 묶인 신세가 됐으니, 전날의 말은 결국 거짓인 셈. 150억 원 비자금은 뭐고, 떼강도는 또 뭔가? 모든 웃음은 근본적으로 역설 혹은 아이러니, 긴장 또는 돌출. 따라서 '돈 안 줬다'는 그대의 역설을 어찌 개그라 아니할 수 있겠나.
 나의 유머는 이러했네. 사람들이 자기 당파에 끌어들이려 할 때마다 나는 "우스갯말로 얼버무리며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듯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교묘하게 정치적 파장으로부터 벗어나곤 했지. 유머야말로 내겐 난공불락의 정치적 전술이었던 셈이지. 유머가 없었다면 나는 일찍이 형장의 이슬이 됐을 것. 그대 역시 대북 송금 전에 유머를 썼다면 불행한 일을 당하지 않아도 좋았을 것을. 권력의 전지전능함이 그대를 해학이 아니라 엄숙주의로 몰고 갔고, 딱딱하게 굳은 그대는 결국 그리 되고 말았어!
 지원 군, 나의 실학(實學)을, 나의 이용후생(利用厚生)을 본뜨려 했던가? 북을 돕는 게 민족의 '후생'을 위한 '이용'이라고? 그렇다면 이 역시 나의 '북벌론(北伐論) 방법'을 썼어야지. '청나라 오랑캐를 물리쳐 중원을 회복해야 한다'는 북벌론이 비현실적임을 잘 알고 있던 나는 친(親)북벌론자들보다 더 강하게 북벌론의 실행을 요구했어. 그리하여 생길 당시의 거대 통치 철학에서 이제 한낱 반대파 공격용으로 전락해 버린 북벌론의 허구성을 드러냄으로써 결국 무력화시킨 고도한 테크닉!
 이런 방식, 즉 북한에 돈을 주지 않고 송금을 강하게 반대함으로써 송금의 이용후생·민족적 가치를 오히려 높여 결국 송금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역리(易理)의 방식을 시도해 봄 직하지 않았는가?
 애재(哀哉)라. 실패의 길로 간 그대의 이름은 박지원. 비록 한자는 다를지라도 음성학상 나와 똑같으니 나로선 신경쓰이는 일. 이건 내 이름 값에 관한 이미지의 문제야!
 그러므로 나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은 300 년 뒤 그대 박지원(朴智元)을 안타까이 여기며 오늘 이렇게 통매(痛罵)하지 않을 수 없네.
이 광 식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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