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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그 사랑

-이영춘 시인 헌정시낭송 특별기획을 다녀와서

데스크 2019년 09월 09일 월요일 10 면
▲ 이서빈 시인
▲ 이서빈 시인

후드득,마지막 땀을 털고 더운 계절을 밀어내고 돌아서보니 곱고 환한 빛들 앉았던 자리마다 가을이 한 장씩 내려앉기 시작한다.곧 앙상한 계절이 올 것이다.하현을 지난 그믐달빛 손톱마다 하얗게 돋아나는 날 ‘소리로 울리는 이영춘 시문학’ 잔치에 초대를 받아 설렘과 행복을 싣고 춘천에 갔다.시인들의 마음에서 푸른물결이 출렁출렁 번져나가 강물도 하늘도 우주까지도 푸르름으로 물들었다.

청정의 도시 춘천을 ‘춘천’하고 부르면 봄물이 파랗게 돋을 것 같다.강원도 사람들은 참으로 해맑고 순수해 천연기념물 같다는 여운을 지울 수가 없다.행사장에는 시낭송가들의 푸르고 맑은 목소리가 또르르 옥구슬처럼 날아다녀 혼을 다 빼앗겼다.의자가 모자라 대나무 숲처럼 빼곡하게 서있는 시숲에 별들이 내려와 시를 하늘로 퍼 나르고 있었다.그 낭송소리를 꺾어 재색빛 빌딩숲 빼곡한 서울에 꺾꽂이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빗길을 걸으며’,‘해,저 붉은 얼굴’,‘오줌발,별꽃무늬’,‘백야,그 사랑’…모두 이영춘 시인이 낳고 기른 시들이다.토질이 좋은지,영농법이 탁월한지,햇빛이 특별한지,달빛이 색다른지,그것도 아니면 별들이 밤마다 내려와 정기를 불어넣고 팔베개를 해 줬는지,바람이 아무도 몰래 밤마다 신바람을 날라다 먹였는지,원인을 알 수는 없지만 시들은 토실토실 탐스럽게 자라고 잘 영글어 송이송이 열려서 대풍을 자랑하고 있었다.김진규 그믐달 시낭송 콘서트대표의 시낭송 기획 의도는 시인과 시낭송가가 협력해 시문학 발전에 노력하겠다는 뜻이라고 했다.지음(知音)이란 말이 자꾸만 생각나게 했다.한 시인이 평생 가꾸어놓은 시밭에서 잘 여문 시열매를 솎아내 이렇게 우렁우렁 빛을 내기란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일이 아니다.수백 수십 번씩 담금질하고 벼린 시들이 별빛으로 쏟아져 가슴으로 스며들어 가슴을 서늘하게 적셨다.신의 경지에 오른 아름다운 시어와 천상의 목소리에 강물도 야위어 수척해지고 지나가던 바람도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넋을 놓고 술렁거렸다.

서울로 오는 길,낭송가들이 날라다 주는 주옥같은 시들이 동승을 했다.집에 도착하자 야심한 밤이건만 소리들은 춘천으로 돌아갈 생각을 접은 듯 내 잠자리에 내 팔을 베고 함께 드러누웠다.아침에 일어나니 한 파람의 꿈이었다.인간으로 태어나서 이 멋진 시어들을 들을 수 있음에 가슴이 뛰고 설렌다.동시대에 함께여서 고맙습니다.라고 혼자 춘천을 향해 절을 올렸다.내 마음을 풀벌레들이 먼저 알고 자명금(自鳴琴)으로 장단을 맞추기 시작한다.파랗게 몸서리치던 초록그늘에서 가을 한 잎 뚝,떨어진다.반짝이는 시들이 진화된 계절을 빚어내는 소리다.

이서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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