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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운성 교수의 세계농업문명 답사] 6.히말라야 계곡 오지의 유목민을 만나며

위협받는 현대사회 인간성, 단절이 주는 인간 본연의 삶
8000m 이상 고봉 일대 감춰진 마을
계절따라 양·염소 데리며 생활 영위
농업특성, 자연기후·풍토따라 결정
자본주의적 토지소유구조 확대 성행
유목 위기 목초지 공유지화 등 필요

데스크 2019년 09월 12일 목요일 17 면
▲ ① 마나슬루 계곡의 출렁다리를 건너는 가축
▲ ① 마나슬루 계곡의 출렁다리를 건너는 가축


히말라야로 트레킹을 간다고 하면 흔히 첩첩 고봉들의 장엄한 만년설산을 그린다.우선 워낙 장대한 산맥이기에 어디로부터 접근할까 하는 망설임도 크다.여러 차례 중국 티베트와 네팔에서 따로 접근해 히말라야 고봉의 여러 계곡오지를 답사하며,자연의 경외로움과 신비롭게까지 느껴지는 산속 사람들을 만나곤 했다.그 중에서 히말라야 8000m 이상 고봉의 하나로 중국과 맞대고 있는 마나슬루 산록의 티벳인 마을인 프록으로 향하고 있었다.산기슭을 따라 만들어진 거대한 계단식 밭을 돌아 아찔한 절벽을 깎아 만든 길과 험한 벼랑 사이를 잇는 수많은 출렁다리를 건넜다.이렇듯 몇 날을 걸으면서,좁은 길을 가득 메운 당나귀나 양 또는 염소 등의 가축 떼가 지나가기를 한쪽에 물러서서 한참 동안 기다리는 교통정체를 맛보았다.

이렇게 산길을 따라 올라가던 양과 염소들은 바닥에 구멍이 성성한 출렁다리 앞에 멈춘 채 도무지 다리를 건너려 하지 않는다.이때 목동이 리더격인 양 한 마리를 억지힘으로 출렁다리로 밀어 넣으면 나머지 놈들은 그 뒤를 따라 흔들대는 다리를 건너는 모습은 가히 일품이다.또한 이 계곡은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왕정폐지를 요구하는 반정부주의자로 중국 모택동 이론을 따르는 네팔 마오이스트들의 본거지였다.그래서 계곡 곳곳에 진홍빛 바탕에 낫과 망치를 그려놓은 생생한 벽화와 깃발이 이를 말해준다.이는 그간 외부와의 단절로 이어져 히말라야의 다른 계곡보다도 자연과 인간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더 간직하고 있음이었다.

이른 아침 양과 염소 등의 가축을 풀어 놓고,새벽 추위를 이기기 위해 낡은 거적을 덮고 모닥불가에 앉아 오돌 떨며 식사를 하는 유목민 가족들의 애처로움은 안쓰럽다.이들은 봄이 되면 스위스 알프스의 목동처럼 가축을 높은 산록으로 끌고 올라가며 살을 찌운다.그리고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하산해 번식을 위해 성장한 가축의 일부를 남겨놓고 팔거나 식용 또는 젖을 짜서 치즈나 버터 등으로 가공해 살고 있다.이들 산속의 유목민들도 몽골에서 만난 가축을 이끌고 물과 풀을 찾아다니는 전형적인 목축형 유목민 중의 하나였다.그런데,산악지형 특성상 기동성있는 말을 타고 가축을 치기에는 무리였기에 역사적으로 큰 소리 한번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 ②히말라야 마나슬루 계곡의 초등학생
▲ ②히말라야 마나슬루 계곡의 초등학생


여기서 또 하나의 유목 형태인 수렵채집형의 대표적인 유목민이었던 지구반대편의 북미대평원의 인디언이 생각난다.그들의 주요 사냥대상이었던 들소는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무려 6000만 마리가 대평원의 풀을 뜯고 있었다고 추정한다.이 야생들소는 인디언 삶의 전부였다.고기와 가죽을 얻고 배설물은 연료로,뼈는 칼과 화살촉으로,심줄은 활시위 등으로 쓰여졌다.그러던 것이 대륙횡단 철도부설과 대서양을 건너온 유럽농부들의 토지소유가 들소 감소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즉 유럽인들은 목축을 시작하면서 들소의 서식공간을 감소시켰으며 가축의 경쟁자인 들소를 없애기 시작했기 때문이다.거기에 평원의 들소를 놀이삼아 총을 쏘아 죽여 100년 사이에 900여 마리까지 줄어드는 멸종위기까지 갔으니 인간의 잔인함에 놀랄 뿐이다.이같은 들소의 감소는 수렵채집형 유목민 인디언 시대의 종언을 의미했다.그러나 개체복원으로 25만 마리 이상으로 늘어난 들소를 사우스다코다에서 만난 일은 행운이었다.

한편 2000년대를 코앞에 두고 미국의 일간지 워싱톤 포스트지는 지난 서기 1001년부터 2000년까지의 1000년대의 가장 위대한 인물로 유목민인 몽골의 징기스칸을 선정한다.이는 다름 아닌 어떤 지역의 농업특성은 자연기후와 풍토에 의해 결정되고,이렇게 결정된 농업경영 형태는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성격을 결정짓는다는 믿음을 만든다.즉,중세 몽골 유목민족의 공격적이고 기동적인 습성은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유목원리였지,본래 인간이 지닌 성격과는 다르지 않았을까 보고 있다.
▲ ③히말라야 마나슬루 계곡의 유목민
▲ ③히말라야 마나슬루 계곡의 유목민


그런데,유목의 새로운 위기의 하나는 자본주의적 토지소유 구조에서 온 것으로 보고 있다.광활한 내몽골 초원이나 북미 대평원에 개인소유의 땅임을 알리는 경계울타리는 물과 풀을 찾아다니는 유목의 길을 막는 대신 가두리축산이 성행하고 있기 때문이다.몽골대초원의 노인이 말 대신 오토바이를 타고 가축을 모는 자식을 보며 혀는 차는 모습과 트럭에 실려 이동하는 가축의 모습은 다름 아닌 유목의 미래였다.그러나 아직도 지구상의 약 4000만 명 정도의 유목민이 생활하고 있음을 기억하고 있다.이제 유목자체는 인류문화유산이자 세계중요농업유산이다.그래서 이의 보전을 위한 토지소유제의 한계를 막기 위해서라도 기존의 국립공원을 확대보존하고,유목지역 목초지의 공유지화 강화을 위한 도움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동시에 최근 산간이나 대평원에서 이루어지던 유목생활이 현대 인간사회 한가운데로 들어와 인간의 생활의식을 바꾼 신유목민의 논리에 주목하고 있다.이제 마나슬루 하산 길에 또 만난 유목민의 미소와 양의 음메소리가 그립다.


전운성 강원대 농업자원경제학과 명예교수

△강원대 농학과 졸업△고려대 농경제학 석사△일본 큐슈대학 농경제학 박사△전 한국농업사학회 회장△전 미국 예일대학 농민연구소 객원교수△아태아프리카원장△농업기술실용화재단 초대이사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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