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사우디 왕세자 긴급 통화로 상황 공유
미·이란 긴장 고조, 예멘 내전 격화할 듯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최대 석유 탈황·정제 시설인 아브카이크 단지와 인근 쿠라이스 유전이 14일(현지시간) 새벽 예멘 반군의 무인기 공격으로 불이 나 큰 피해를 봤다. 사우디 국영방송은 시설 가동과 원유 생산에 별다른 피해가 없다고 보도했지만 가동이 중단됐다는 보도가 내부 관계자를 인용해 속속 나오는 만큼 타격이 전혀 없었다고는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위성 사진에서도 검은 연기가 보일 정도로 화재 규모가 상당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브카이크 단지는 사우디 동부에 몰린 주요 유전에서 생산되는 원유를 탈황·정제해 수출항이나 국내 정유시설로 보내는 시설이다.

하루 처리량이 700만 배럴로 사우디 전체 산유량의 70%에 달한다. 예멘 반군은 이날 무인기 10대로 아브카이크 단지와 쿠라이스 유전을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반군으로서는 매우 ‘가성비’가 높은 공격을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사우디로서는 물리적 피해뿐 아니라 국가의 ‘생명줄’이라고 할 수 있는 기간 시설의 취약성이 드러나고 말았다.

서방보다 기술력이 낮고 저렴한 예멘 반군의 무인기가 사우디 영공을 남에서 북으로 가로질러 무려 1천㎞를 날아와 가장 중요한 국가 기간시설을 타격했는데도 사실상 무방비였다. 에너지 분석가 존 켐프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번 무인기 공격으로 아브카이크 시설이 사우디에서 가장 위험한 취약지라는 점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단 한 곳의 가동 중단으로 하루에 원유 수백만 배럴이 시장에서 사라질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미국 에너지 시장 컨설팅회사 라피단도 이날 낸 보고서에서 “아브카이크 시설은 2006년 2월에도 알카에다가 차량폭탄으로 공격한 곳이다”라며 “이곳은 사우디를 적대하는 세력의 최우선 표적이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이어 “서방은 군사적 수단으로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이 봉쇄해도) 빠르게 재개할 수 있지만 구조적 취약점을 지닌 아브카이크 시설은 신속히 대체하거나 수리할 수도 없다”라고 지적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탈황·정제 시설이 공격당하자 순식간에 국제적인 이목이 쏠렸다. 사우디 국영 SPA통신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14일 이날 공격과 관련해 긴급히 통화했다고 전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날 낸 성명에서 “세계 원유 시장은 현재로선 재고가 충분해 공급은 잘 이뤄질 것”이라며 “현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면서 사우디 당국, 주요 산유국과 수입국과 연락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번 공격으로 소강상태였던 예멘 내전은 급속히 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왕정을 지탱하는 석유 산업의 기간시설을 공격당한 사우디는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선언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로 “테러분자(예멘 반군)의 침략에 제대로 대응하겠다”라고 말했다. 예멘 반군도 “적들이 더 뼈아픈 작전을 확대하겠다”라고 경고했다.

사우디와 미국이 예멘 반군의 후원자로 이란을 지목하는 만큼 미국 진영은 이날 공격을 사우디에 대한 이란의 군사 위협이라고 규정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공화당의 대표적인 트럼프 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14일 트위터에 “이런 도발이 계속되거나 우라늄 농축을 증대하면 미국이 이란의 석유 시설을 공격하는 선택도 고려할 때다”라고 이란에 대한 적대적 대응을 촉구했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에서 이란산 원유 수입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대이란 제재가 일부 해제될 수도 있다는 기대가 커졌으나 이번 공격으로 가능성이 다시 낮아지게 됐다. 공격당한 석유시설의 규모와 비중이 워낙 큰 탓에 국제 유가의 향방에도 관심이 쏠린다. 블룸버그는 “중동의 지정학이 복수심을 안고 돌아와 원유 시장을 강타할 것이다. 모두 두려워하는 일이 벌어졌다”라면서 피해가 커 시설 가동 중단이 길어지면 원유 수입국이 비축유에 손을 대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또 사우디의 원유 수출이 장기간 차질을 빚으면 석유수출국기구와 주요 산유국(OPEC+)의 기한 연장이 논의되는 산유량 감산 합의가 백지화될 공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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