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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사라진 마을을 찾아서]“철원은 살아있는 역사 그자체, 기록 보존돼야”

인터뷰-김영규 철원역사문화연구소장,김호선 전 초대 철원문화원장(근북면 율목리 태생)

박창현 chpark@kado.net 2019년 09월 19일 목요일 15 면

#김영규 철원역사문화연구소장

“철원에는 정전 6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비밀스럽게 감춰진 역사의 현장이 수 없이 많다.그 역사와 기록들이 분단과 전쟁의 상흔 속에 점차 사라지고 있어 너무 안타깝다.”

김영규 철원역사문화연구소장은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철원의 비무장지대는 자연과 사람이 하나돼 교감하고 위로받는 생태계의 보고(寶庫)가 되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비무장지대 내 사라진 마을의 기록발굴과 남북공동학술조사가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김 소장은 이어 “철원은 궁예의 태봉국부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관통한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분단 이후에도 안보를 이유로 주거와 이동이 제한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황무지를 개척해 나간 실향민들의 삶 역시 체계적인 정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그는 또 “남북평화와 통일시대를 맞아 궁예도성과 경원선,금강산전철 복원과 함께 철원군에 편입된 김화군이 다시 세상 속으로 재탄생하는 날이 오면 철원과 김화의 역사는 새롭게 쓰여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김호선(87) 전 초대 철원문화원장(근북면 율목리 태생)

“십자탑에 올라 바라보면 어렸을 때 살던 마을의 집터가 눈에 들어오는데 70년 가까이 철책에 가로막혀 한 걸음도 밟아보지 못하네요.”

김호선 초대 철원문화원장은 김화군(현 철원군) 근북면 율목리에서 태어나 고교 과정인 철원농민학교 2학년 시절인 1950년 한국전쟁을 맞은 철원과 김화의 산증인이다.김 전 원장은 1940년대 고향 율목리와 면소재지인 두촌리를 오고다녔던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근북면 일대 평야에서 생산된 곡식은 김화군 전체 식량생산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엄청났다”고 회상했다.그는 “1945년 8월 광복과 함께 일제가 황급히 물러난 후 소련군(현 러시아)이 내촌리 양곡창고에 쌓여있던 쌀을 군용차량에 실어나가자 마을 청년들이 소련군에 항의했던 기억이 난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그는 또 “율목리에서 두촌리까지 2㎞ 가량 걸어 근북중을 통학했다.재학생은 200여명쯤 됐다.소풍은 한탄강 줄기를 끼고 있는 평강군 남면 정연리(현 철원군 갈말읍)로 자주 갔다”고 기억을 더듬었다.김 전 원장은 “내 평생에 마지막 소원이라면 남북한이 다시 하나가 돼 김화군이라는 행정구역이 원래대로 복원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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