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두 번 밤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날이 있는데,춘분(春分)과 추분(秋分)이다.양(陽)의 기운과 음(陰)의 기운이 균형을 이루는 지점이다.그러나 두 절기가 음양의 세력 균형점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내용적으로는 한참 다르다.춘분이 세력교차점을 지나 양의 극점인 하지(夏至)를 향해간다면,추분은 반대로 음의 극점인 동지(冬至)를 향해 세력을 키워간다.

‘덥고 추운 것도 추분과 춘분까지’라는 속담이 두 절기의 속성을 잘 보여준다.아무리 늦더위가 있다 해도 추분을 기점으로 음의 영역에 진입하게 되므로 힘을 못 쓰게 된다는 것이다.마찬가지로 늦추위가 있다 한들 춘분이 지나면 시시각각 축적되고 있는 따뜻한 기운을 당해낼 도리가 없다는 뜻이다.드러나지 않지만 엄격하게 진행되는 자연계의 권력교체와도 같다.

절기상으로 달포 전인 지난 8월8일 가을이 시작되는 입추(立秋)가 지났다.지금까지는 뜨거운 기운이 곳곳에 남아 여름을 무색하게 한 날이 없지 않았다.그러나 추분을 기점으로 절기는 그 서늘한 정체성을 보다 뚜렷하게 드러내기 시작한다.보름 간격으로 찬 이슬이 내린다는 한로(寒露),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을 거쳐 11월8일 입동(立冬)으로 직행하게 된다.

운행을 멈추는 법이 없는 계절이 긴 겨울의 터널로 진입하고 있는 셈이다.추분을 지난 계절이 다시 세력 균형을 이루는 춘분에 이르려면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하루가 다르게 몸집을 불려나가는 음의 기운은 동지에 이르러 정점을 찍게 될 것이다.그 반환점을 지나고도 반년을 더 가야 반대편에 있는 춘분에 도달하게 되고 다시 한 번 음양의 조화를 완성하게 된다.

이제 만물이 긴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봄과 여름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시기라면,가을과 겨울은 거두고 갈무리하는 때라고 한다.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떨어지고 일조량은 줄어들게 된다.지금 초목은 시들어 앞을 다투어 낙엽이 되고,벌레와 짐승은 활동을 줄이며 겨울잠을 준비하게 된다.긴 터널을 통과하려면 이렇게 웅크려야 한다는 것이리라.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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