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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발

진종인 whddls25@kado.net 2019년 09월 24일 화요일 9 면

‘부모님으로부터 몸을 물려받은 만큼 소중히 간직해야 한다’(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는 생각을 하는 우리나라에서 머리카락을 미는 삭발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불교에서는 세속의 번뇌와 얽매임을 끊는 결단의 표시로 출가 수행자들이 삭발하지만 정치인이나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저항수단으로 사용됐다.

특히 자신의 의사를 알릴 방법이 많지 않았던 독재시대에 삭발은 중요한 투쟁 수단의 하나였다.1987년 박찬종 당시 통일민주당 의원이 제13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하는 삭발을 시작으로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처리에 대한 항의,2013년 정당해산심판 청구에 반발한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삭발 등 정치권에서는 삭발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요즘은 지역현안 해결이나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한 시위현장에서도 삭발이 자주 등장한다.김진하 양양군수가 오색케이블카사업 추진을 위해 삭발을 했고, 이상건 양구군의장도 지난 8월 2사단해체 철회를 요구하는 상경집회에서 삭발을 강행했다.

최근에는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무소속 이언주 의원과 자유한국당 박인숙 의원이 삭발한데 이어 한국당 황교안 대표까지 제1야당 대표로는 처음으로 삭발을 단행했다.황 대표의 삭발을 계기로 한국당의원들의 ‘릴레이 삭발’이 계속되고 있다.

정치인의 삭발은 단식처럼 최후의 수단이나 다름없는데 한국당 의원들의 삭발에 대해 ‘내년 총선을 겨냥한 공천용 퍼포먼스’라거나 ‘명분없는 쇼’라는 비판이 정치권 일각에서 나오고 황 대표의 삭발 패러디물까지 확산하는 것을 보면 결연한 투쟁 의지를 보여주는데는 실패한 듯 싶다.

‘조국 퇴진’을 요구하며 시작된 야당의 ‘삭발 투쟁’이 본연의 메시지를 인식시켜주기보다는 오히려 삭발이라는 ‘정치적 이벤트’만 남아버린, 본말이 전도된 상황이 돼버리고 만 것이다.이제는 삭발이나 장외투쟁 같은 구태의연한 방식을 버리고 좀 더 국민에게 다가갈수 있는 참신한 방식으로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진종인 논설위원 whddls25@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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