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말’이 많은 시대다.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할 수 없었던 엄혹한 독재시대가 있었나 싶을 정도다.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 정도를 나타내는 척도이기도 하지만,그 ‘말’에 대한 책임도 감당해야 한다.말은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지만,한 마디 잘못하는 말로 인해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지기도 한다.그래서 ‘입은 곧 재앙의 문이요,혀는 곧 몸을 자르는 칼(口是禍之門 舌是斬身)’이라고 하지 않던가.말은 자기 몸을 베는 칼과 같이 재앙을 불러오기도 한다는 경고다.

그럼에도 여러 주장을 펼치는 이들의 말을 적극 받아들여 부국강병을 꾀하기도 했다.중국 춘추전국시대 수많은 학자나 학파들이 자신들의 사상을 주장했던 ‘백가쟁명(百家爭鳴)’이 그것이다.이 시대는 권력을 다투는 과정에서도 한편으로는 다양한 학문과 철학의 전성기이기도 했다.공자의 유가(儒家)와 노자와 장자의 도가(道家),한비자와 순자의 법가(法家),묵자의 묵가(墨家) 등 이들의 주장은 현실에 적용됐다.

하지만 사람의 입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온갖 매체를 통해 ‘말’이 범람하는 요즘은 그 말로 인해 폐해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품격있는 말’을 발견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김훈 작가는 “우리 시대에 가장 썩어빠진 것이 언어라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 타락의 끝까지 갔다”고 개탄하면서 “말을 할 때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하니까 언어는 인간 소통에 기여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아무리 논리적인 말이라도 그 논리를 뒷받침하는 근거에 따라 참이 되기도 하고 거짓이 되기도 한다.역사적 사실을 두고도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고 지금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가깝게는 일제 강점기에 대한 논란과 박정희의 산업화 공로자와 독재자라는 상반된 평가가 있다.그래서 말을 앞세우기 보다는 우리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먼저 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말의 홍수 속에 잠겨있다.그 흔한 말에는 정작 할 말을 못하는 역설이 숨어있다.말 많은 시대에 ‘말 좀 하자’고 하소연을 해야 하다니.

천남수 사회조사연구소장 chonns@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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