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고(蘭皐) 김병연(金炳淵·1807~1863)은 조선후기를 풍미한 방랑시인이다.영월의 한 백일장에서 선천부사를 지낸 조부 김익순(金益淳)을 비난한 시로 장원을 한 것이 그의 인생행로를 바꿨다.이 일을 자책하며 방랑의 삶을 산다.그는 특유의 풍자와 해학으로 권력과 기득권을 비틀고 황폐화돼 가는 세태를 풍자했다.한시(漢詩)를 통해 때로는 호되게 꾸짖고 때로는 어르고 달래며 기존의 가치와 기준에 얽매임이 없는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다.조부를 비난한 그 굴레가 역설적으로 더 자유를 구가하게 한 것이다.

어느 환갑잔치에서 남긴 ‘회갑연시(還甲宴詩)’는 그의 시재(詩才)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그는 연회의 좌중을 향해 “저기 앉은 저 늙은이 도대체 사람 같지 않네(彼坐老人不似人)”라고 도발적인 포문을 연다.자식들이 들고일어나자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앉은 것 같다(疑是天上降眞仙)”라며 짐짓 너스레를 떤다.이쯤에서 싸움이 끝나면 김삿갓이 아니고,그 필명이 오늘까지 전하지 못했을 것이다.한 번 더 뒤집고 엎어 치는 반전이 이어진다.자식들이 안도하는 사이 “그 일곱 자식들은 다 도적놈이네(其中七子皆爲賊)”라고 사정없이 허를 찔러간다.자식들이 다시 흥분하자 “천도를 도적 해다가 수연에 드렸다(偸得天桃獻壽宴)”라며 상대의 반격을 무력화시켜 놓았다.장수(長壽)를 상징하는 복숭아를 훔쳐 부모에게 올리는 것은 도적으로 치지 않고 오히려 효성으로 여겼던 풍습을 빗대던 것이다.할 말은 할 말대로 다 하고 대접은 대접대로 받은 것이다.

그는 경기도 양주에서 양반 가문 김안근(金安根)의 네 아들 중 차남으로 태어났으나 조부가 홍경래의 난에 연루돼 가문이 풍비박산되는 고초를 겪었다.영월은 그의 삶을 통째로 바꾼 백일장이 열린 곳이자 방랑을 끝내고 돌아와 묻힌 곳이다.영월군은 그와의 인연을 기려 하동면을 김삿갓 면으로 개칭하고 해마다 김삿갓 문화제를 연다.이번 주 토요일(28일) 강원도민일보와 영월군이 그의 탄생 212주년 기념 ‘김삿갓 해학의 길 걷기’행사를 갖는다.200년 전으로 돌아가 그의 시혼(詩魂)을 느껴보는 것도 좋겠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