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후 27사단 최재혁 대위 아내

▲ 옥시후 27사단 최재혁 대위 아내
▲ 옥시후 27사단 최재혁 대위 아내

'애 열이 안 내려서 새벽에 응급실 왔어.이번 주도 못 와?’‘다음 주에는 꼭 갈게.미안.’

늘 미안하다는 사람,가끔 집에 들러 쉬고 가는 사람.그런 사람과 결혼한 나는,대한민국 군인의 아내입니다.9년 전,갓 소위로 임관했던 이 사람을 만났습니다.얼굴이 까맣고 어리숙해 보이던 사람이,자신을 소개할 때만큼은 호기로웠습니다.

“대한민국 육군 장교입니다!”

‘무언가를 지킨다’는 정의감이 멋져 보여 군인이 되겠다던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르는 표정이었습니다.그리고,그런 내게서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던 이 사람을 알아차렸습니다.그렇게 시작된 연애가 5년.한 달에 한 번쯤 철원과 서울을 오가며 만난 우리에게는 그 흔한 연인들의 크리스마스도,기념일도 없었습니다.신수리와 와수리의 오래된 시장과 낡은 가게들,허름한 국밥집과 유일한 프랜차이즈 빵집 2층.그게 다였지만 밥 한 끼 겨우 먹고 얼굴 한 번 겨우 보고 돌아오는 길이 아쉽기만 했습니다.그래서 더 짧게만 느껴지던 연애기간을 뒤로하고 우리는 결혼을 했습니다.나는 지금,그를 꼭 빼닮은 아이를 낳아 키우며 워킹맘으로 살고 있습니다.그리고 여전히 그를 한 달에 한두 번 만납니다.

문득 남편의 빈자리를 둘러본 날이 있습니다.기도가 막힌 아이의 숨통을 틔우려 사색이 된 채 등을 두드리던 한낮에.하긴,뱃속의 아이를 확인하던 날도,아이를 낳던 날 의료사고를 당했던 위험한 순간에도,갓난아이의 작은 손등에 긴 바늘이 꽂히던 날도,나는 혼자였습니다.그때마다 아이와 나밖에 없는 공간은 숨 막히게 두려운 공포였고,둘 중 성인이자 보호자인 나는 ‘책임’이라는 무거운 것을 혼자 감당해야 했습니다.그 무렵의 두려움과 외로움들은 그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서로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대한민국 육군으로,나는 국가기관 연구원으로,아이는 잘 먹고 잘 웃기는 유치원생으로.

그를 꼭 빼닮은 딸아이는 가끔 만나는 아빠를 가장 좋은 친구로 여깁니다.아빠의 등을 산처럼 올라타고 유독 아빠 앞에서 어리광을 더 부립니다.누가 봐도 아빠와 똑같이 생겼지만 그 말에 기분 나빠하고,“아빠 입에서 똥냄새나니까 뽀뽀하기 싫어!” 하면서도,“아빠가 충성하는 게 좋아.”라고 말합니다.얼굴을 마주하고 살을 맞대는 일보다 휴대전화 속 얼굴과 목소리를 자주 접하던 아이는 이제 훈련 중인 아빠가 보고 싶다고 직접 영상통화를 겁니다.퇴근 후 티셔츠 차림 이기라도 하면 “충성 옷 입고 다시 전화해!”라고 합니다.뱃속에서부터 아빠의 빈자리에 익숙했던 덕인지 오랜만에 집을 찾은 아빠가 ‘충성하러 가는’ 일에 연연하지 않고, “이기자!”하고 크게 외칩니다.그러면 나는 그런 부녀가 안타까우면서도 닮은 모습에 웃음 짓습니다.

그 사이 그는 원주로 부대를 옮겼고,약 2년 동안 한 달에 한두 번,아이와 제가 있는 일산 집으로 부지런히 다녀갔습니다.가끔 제가 출장으로 원주에 들를 때면 알뜰히 찾아 두었던 맛집으로 안내하며.반계동 곱창집,뒷고기 집,중앙시장까지.오랜만에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면 철원에서 데이트하던 시절이 생각나곤 했습니다.얼마 전에는 화천으로 옮긴 그를 찾았습니다.때마침 지역에서 ‘토마토축제’가 열리고 있어 볼거리가 있었습니다.근처 마트를 찾았다가 문득 군인가족이 대부분인 주변을 알아차린 것은 웬일인지 신이 난 남편을 보고서였습니다.혼자 타지에서 생활하면서 함께 거주하는 군인가족들을 보고 이 사람은 얼마나 부러웠던 걸까요?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늘은 나도 가족이 있다!’ 하는냥,아이처럼 들뜬 남편을 보자 어쩐지 짠해졌던 날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각자의 자리에 익숙해진 지금,다시 생각을 해 봅니다.적어도 저 사람은,내가 사회인으로서 결정하는 것들을 한 번도 반대하지 않았다는 것.주말부부도,맞벌이도,육아에 있어서도. 어리숙하기만 하던 한 남자가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되어 성장하는 모습을 지금껏 지켜보면서,저 사람이 좋은 남편,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 노력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는 것.그리고,갓 임관해 서툴기만 하던 그가 대위가 되고 중대장이 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저 사람이 적어도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서의 자리는 훌륭히 지키고자 한다는 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는 것.

변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그는 여전히 가끔 집에 들르는 남편,가끔 만나는 아이 아빠입니다.그리고 여전히 자부심 넘치는 대한민국 육군 장교이고요.앞으로 우리 가정에 어떤 일이 닥칠지,또 그때마다 나는 홀로 얼마나 무섭고 무거울지 두렵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자부심을 자랑합니다.군인이라는 직업을 천명으로 알고,한 나라의 땅과 사람들을 지키려 숱하게 밤을 새우고 생채기가 나는 이 사람의 자부심을.그의 자부심은 나의 자부심이고 이제 우리 아이의 자부심이기도 하기에.나와 우리 가족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와 그의 동료들이 흘렸을 땀과 피와 눈물에 대한 의미를 잘 알기에.많은 군인의 아내들이,또 가족들이 그 자부심을 지키고자 홀로 가정을 지키고 아이를 키우며 외로이 버티리라 짐작합니다.

그의 군생활 시작을 함께한 사람으로서,또 군인으로서 그의 마지막 날을 함께할 사람으로서,한 군인의 아내로서,주어지는 시간 동안 그가 참군인이기를 바랍니다.그 직업을 꿈꾸고 바라며 준비하던 시절부터 시작됐을 자부심을 부디 지켜내어,언젠가 군복을 벗는 날,스스로 자랑스러운 모습이길 바랍니다.누군가의 아들이고 형제자매일 이 나라의 또 다른 자부심들에게 자랑이 되고 모범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가족을 포함한 국민들 뿐만 아니라,또 다른 자부심들마저 지켜내는 리더로 성장하길 바랍니다.그를 위해,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날을 떠올립니다.처음,반짝이는 눈으로 호기롭게 자신을 군인이라 소개하던 그 사람의 자부심을 마주하던 그날을.그리고 그런 그를,그의 자부심을 지켜내는 아내로 살아가자 다짐합니다.그날 그의 반짝이던 자부심을 지킬 수 있도록,나와 나의 아이가 그에게 거울이 되자고.

자신의 사명이 눈부시게 자랑스럽다는 사람,그 자부심을 끝까지 지키고 싶다는 사람,그런 사람과 가끔 만나는 나는, 대한민국 육군의 아내입니다.

“여보, 최재혁씨.나는 당신에게 ‘다치지 말라.’는 말을 하지 못해요.당신이 아프고 상하는 일이 괴롭지만,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바쳐지는 몸에다 대고 몸을 사리라고 할 수가 없어요.그게 당신이 바라는 군인상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그저 바르게 쓰이기를 기도해요.당신의 몸과 정신이 당신이 바라는 길로,당신의 마음을 지키는 곳으로 쓰이기를.사랑하는 이의 상처를,영면을 늘 마음 졸이며 염려하는 이 마음이 당신에게 짐이 되지 않길 바랍니다.외려 힘이 되고 낙이 되길 바라요.그러다 어느 날,내가 아껴두는 말,삼키는 말,‘존경’이란 단어를 당신에게 전할 날이 꼭 오길 바라요.당신이 영예롭게 군복을 벗는 날,당신과 나,우리 가족의 자긍심,국가의 그것을 마지막까지 지키는 그날이 오기를.그날,꼭 당신 눈 마주 보고 말할게요.고생했다고,당신이 자랑스럽다고,존경한다고.할 수 있다면,신이 있다면,꼭 무사한 손 포개어 전하고 싶어요.당신 거친 손 위에 내 늙은 두 손 얹어 놓고 감사를 또 존경을 전할게요.그러니 오늘도 최선을 다해요.집에 오면 설거지랑 분리수거 꼭 하고.”

성장하는 남편, 아빠를 기대하는 군인의 아내,옥시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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